국민일보

전체메뉴보기 검색

[예수청년] 신앙의 양심으로… 가난한 이 돕기 직업 삼았어요

시민운동단체 ‘희년함께’ 이성영 간사

입력 2017-05-13 00:02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SNS로 공유하기

기사사진

이성영씨가 지난 8일 서울 마포구 한국헨리조지센터의 희년함께 사무실에서 무이자 대출 전환사역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기사사진

지난해 9월에 열린 희년실천주일연합예배에서 참석자들이 ‘희년정신’에 대한 강의를 듣고 있다. 희년함께 제공

기사사진

예배 후 이어진 부대행사에서 참석자들이 각 부스를 돌아보고 있는 모습. 희년함께 제공
이전사진 다음사진
1 2 3
희년은 ‘여호와의 은혜의 해’(사 61:2) 또는 ‘자유의 해’(겔 46:17)로 불린다. 희년이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빚을 탕감하고 노예를 해방했으며 조상의 재산을 저당 잡힌 이들에게 재산을 돌려줬다.

희년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도 관계 깊다. 누가복음 4장에는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라고 나와 있다. 예수님은 빈자의 고단한 삶에 뛰어들어 동행하셨다.

오늘날도 희년의 정신을 계승하는 이들이 있다. 이성영(35)씨도 그 중 한 명이다. 그는 기독교시민운동단체 ‘희년함께’의 전임간사이자 학술기획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1984년 ‘한국헨리조지협회’란 이름으로 출발한 희년함께는 ‘성경적 토지정의를 위한 모임’을 거쳐 현재 희년은행, 토지정의시민연대, 토지·자유연구소 등을 개설해 다방면에서 활동 중이다.

“지난해부터는 고금리 부채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대출을 무이자 대출로 전환해주는 ‘희년은행’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난 8일 서울 마포구 신촌로 헨리조지센터에서 이씨를 만났다. 그는 최근 주력하고 있는 사역을 소개했다.

“빚을 진 청년들 상당수는 집에서 실질적으로 가장 역할을 하고 있어요. 취업도 어려운데 부모님이 아프셔서 병원비를 마련해야 하는 등 돈이 필요한 상황이 생기죠. 고정 수입이 없으니 신용도가 낮고 고금리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됩니다.”

실제로 많은 청년들이 고금리 대출을 받고 있다. 지난 3월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제윤경 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4년간 대부업체·저축은행의 가계대출 잔액 50조 9000억 원 중 절반이 넘는 26조 3000억원이 청년과 여성층의 대출이다.

“부채가 감당이 안 되면 현실을 부정하고 도피하고 싶어져요. 게임 등에 중독되기도 하고요. 그러는 중에 이자는 눈덩이처럼 불어 상황은 더 악화되죠.” 현재 대부업의 법정이자 최고한도는 27.9%다.

희년은행은 부채탕감운동에서 출발했다. 희년함께는 2015년 기독교윤리실천운동 등과 함께 청춘희년운동본부를 만들어 학자금대출 연체자 10명에게 총 2000만원을 지원했다. 지원 대상자의 평균 연령은 27.2세로 1인당 평균 부채액은 1268만원, 평균 연체기간은 7.5개월이었다.

“도움을 청할 곳이 없어 고립돼 있는 청년들을 보면서 지속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희년은행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빚을 진 청년들이 실제적으로 회복되려면 재무상태가 개선돼야 합니다. 때문에 재무 교육과 상담을 필수로 병행하고 있습니다.”

희년은행은 조합원의 무이자 저축 등으로 운영된다. 기독교인 등이 무이자로 맡긴 돈으로 무이자 대출을 해준다. 협동조합 방식으로 운영되며 지난달까지 조합원 225명, 자본금 1억5000만원이 모였다. 조합원은 대부분 기성세대로 청년들의 회복을 위해 선의로 동참하고 있다. 단체조합원으로는 춘천 예수촌교회, 서울 함께여는교회, 성공회희년교회 등이 있다.

“희년은행은 청년 대출 외에도 공동체로 모여 사는 그룹홈의 전세 보증금 일부를 지원하고 500만원 이상의 채무자에겐 채무조정 상담도 알선하고 있어요.”

이씨가 희년정신을 계승하는 일을 하게 된 것은 ‘신앙인으로서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서다. 그는 한동대에서 도시계획학을 전공했다. “대학생 때 대천덕 신부의 ‘토지와 경제정의’를 읽고 결국 빈곤이 우리사회 양극화의 핵심원인이라는 것을 깨달았죠. 가난하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돕고, 사회양극화 해소를 위해 일하고 싶었지만 겁났어요. 솔직히 밥 먹고 살 수 있을지 걱정이 됐거든요.”

고민 중에 고등학생 시절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학교폭력이 심각했어요. 가해자와 피해자, 방관자가 있었는데 저는 방관자였어요. 신앙인으로서 바른말을 하지 못한 것이 양심에 걸렸지만 개입할 용기가 안 났죠. 대학에 와서 성경을 깊이 묵상하며 반성했어요. 예수님이 우리의 삶에 개입하지 않았으면 저는 구원 받지 못했을 거잖아요.”

‘누군가는 또 다른 누군가의 착취로 지금도 가난해져가고 있다’는 사실을 방관하기 싫어 2008년 희년함께에 합류해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이웃의 몰락을 그저 바라보는 각박한 사회가 아닌 더 가진 자가 베풀고, 서로 보듬는 희년의 문화가 보편화된 사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글=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 사진=강민석 선임기자

뉴스 미란다 원칙
취재원과 독자에게는 국민일보에 자유로이 접근할 권리와 반론·추후보도를 청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고충처리인: gochung@kmib.co.kr  / 전화: 02-781-9711
SNS로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