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신앙] 정재훈 장로 “하나님 영광 드러낼 도전 기회 주신 것”

국민일보

[일과 신앙] 정재훈 장로 “하나님 영광 드러낼 도전 기회 주신 것”

중단위기 美 우주왕복선 두 차례나 살려낸 정재훈 장로

입력 2017-05-16 00:00
취재대행소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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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장로와 아내 정정숙 권사가 최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빌딩에서 인터뷰를 갖고 미국에서의 성공과 신앙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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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장로가 2005년 미국 언론매체들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개발한 우주왕복선 외부 연료탱크 가열장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정재훈 장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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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이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하고 똑같이 생겼잖아요.”

정재훈(70·미국 오렌지카운티한인교회) 장로는 아내 정정숙(70) 권사를 그렇게 소개했다. 대학교 다닐 때 미팅에서 처음 만났는데 헵번이 앉아있어서 깜짝 놀랐다고 했다. 비즈니스로 중국을 방문했다가 한국에 들른 부부를 최근 국민일보에서 만났다.

물론 정 권사의 미모가 헵번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정 장로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을 대하듯 했다. 인터뷰 주인공이 본인이지만 아내도 이야기할 수 있도록 충분히 배려했다. 다툰 적은 있냐고 묻자 정 권사는 “하나님 은혜로 걱정이 없고 평안한데 싸울 일이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정 장로는 “나이 서른에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인정하는 우주과학자가 된 것도 전적으로 하나님 은혜”라고 했다.

정 장로는 첨단 우주개발 부품기업인 LA인근 테이코 엔지니어링 최고경영자로 중단 위기에 처한 미국 우주왕복 프로젝트를 두 번이나 살려낸 인물이다. 그는 1986년 우주 왕복선 챌린저호, 2003년 컬럼비아호의 폭발 원인을 해결했다.

어렸을 때 그는 아버지가 실종돼 어려운 형편에서 자랐다. 하지만 세계적인 과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꿨다. 그래서 서울대를 졸업하고 취직 3년 만에 무역회사 상무로 스카웃 됐지만 1977년 미국으로 향했다.

첫 미국 직장이 테이코 엔지니어링이었다. 시급 4달러25센트를 받는 말단 제도사로 일을 시작했다. 그는 모태신앙을 바탕으로 성실히 일했다. 처음엔 영어가 서툴러 전화가 올 때마다 화장실로 피해 다니기도 했다. 그러나 점차 인정을 받아 7년 만에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그즈음 1986년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고체연료 누출 방지 장치의 결빙으로 발사 73초 만에 폭발했다. NASA는 문제해결 아이디어를 공모했고 전세계에서 40여 개가 접수됐다. 최종 선정된 게 정 장로의 열조정장치였다. 이 덕분에 우주왕복 프로젝트는 재개됐고 이 장치는 이후의 모든 우주왕복선에 장착됐다.

2003년에는 임무를 마치고 지구로 귀환하던 컬럼비아호가 폭발했다. 급저온상태에서 생긴 얼음 때문이었다. 이 문제도 정 장로가 해결했다. 결빙방지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후 미국의 우주산업 개발에 지속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2004년 1월 화성 표면에 착륙한 탐사선 스피릿호와 오퍼튜니티호의 핵심부품인 극저온 신경조직을 개발했다. 2019년에 발사하는 우주 망원경에서 빛 신호를 처리하는 핵심 신경조직도 만들었다.

정 장로는 “이 모든 게 새벽을 깨우는 기도 때문”이라며 “새벽에 말씀을 읽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지혜를 부어주신다”고 강조했다.

그는 “전 세계에 얼마나 똑똑한 사람들이 많았겠느냐. 그런데 하나님께서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해 나한테 기회를 주신 것”이라고 했다.

정 장로는 다 해진 성경책을 들고 있었다. 20년 정도 지닌 책이라고 했다. 겉표지는 너덜너덜 했다. 그는 “손자들에게 가보로 물려줄 것”이라며 웃었다.

그의 성경책엔 어릴 적 일기 서너장이 꽂혀 있었다. “1963년 1월 21일. 영하 18도 추위다. 오늘부터 나흘간 시험이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 대학은 원자공학과에 가서 수석을 계속하면 미국에서 초청받아 도미할 수 있을 것이다. 머리를 싸매고 연구를 한다면 인류의 환희를 위해 봉사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꼭 그렇게 하고야 말겠다.”

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 사진=강민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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