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칼럼] 다시 노무현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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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홍 칼럼] 다시 노무현이 보인다

“문 대통령의 소탈한 행보 노 전 대통령과 닮아… 갈등 부를 사안은 신중히 다루길”

입력 2017-05-14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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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며칠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을 보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올리게 된다. ‘문재인정부는 노무현정부 2기 같다’는 얘기도 있다. 잘못됐다는 게 아니다. 지금까지는 긍정적인 면이 많아 보인다.

무엇보다 탈(脫)권위 행보가 그렇다. 지난 11일, 문 대통령이 새로 임명된 참모들과 테이크 아웃 커피를 들고 청와대 경내를 산책하는 장면이 일제히 보도됐다. 원형 테이블에서 오찬을 함께한 뒤 양복 상의를 벗은 채였다. 대통령도, 참모들도 환하게 웃는 표정이었다. 권위주의에서 벗어나겠다는 문 대통령의 의지가 읽혔다.

이 사진은 14년 전, 노 전 대통령 모습과 오버랩된다. 2003년 3월, 국무회의를 주재하던 그는 회의가 길어지자 휴식을 제안했다. 그리곤 회의장 밖에 마련된 탁자에서 작은 종이컵에 커피를 직접 타 마시며 국무위원들과 대화를 나눴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무슨 대수냐’고 여길지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대통령이 종이컵에, 그것도 직접 커피를 탄다’는 건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국무위원들은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후에도 국무위원들과 종이컵 커피를 들고 담소하곤 했다.

문 대통령은 참모들이 근무하는 비서동에 사무실을 만들어 업무를 볼 예정이라고 한다.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다. 노 전 대통령이 재임 당시 그랬듯 자유로운 토론이 오가는 수석비서관회의를 조만간 다시 볼 수 있을 듯하다. 대통령이 궁금한 게 있으면 참모에게 즉각 전화를 걸어 확인하거나, 불러서 의견을 교환하는 광경도 재연될 것 같다. 서민들과의 스킨십을 중시하는 문 대통령은 정직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억울하지 않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애썼던 노 전 대통령과 닮은꼴이다.

주영훈 경호실장 임명도 노 전 대통령을 연상시킨다. 주 실장이 누구인가. 노 전 대통령 재임 시엔 ‘가족부장’을 맡았고, 퇴임 후엔 봉하마을로 내려가 노 전 대통령을 그림자처럼 보좌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엔 권양숙 여사 비서실장 역할을 묵묵히 수행한 인물이다. 문 대통령이 노무현정부 때의 청와대 정책실장 자리를 다시 만든 것과 청와대 비서동 명칭을 위민관에서 노무현정부 때의 여민관으로 바꾼 것 역시 마찬가지다. 또 노 전 대통령이 대통령 별장인 청남대를 시민에게 돌려줬듯 문 대통령은 몇 년 뒤 청와대를 시민에게 돌려줄 전망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있기까지의 과정을 복기하면 노 전 대통령과 정치철학 등이 유사한 건 운명 아닐까 싶다. 하지만 시대가 달라졌다. 노무현 시대의 과제와 문재인 시대의 과제는 다를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을 넘어서야 한다. 노 전 대통령처럼 권위주의적인 형식은 벗어던지되 그 안에 채울 내용물은 노 전 대통령 시대보다 진일보된 것이어야 한다.

노 전 대통령은 재임 때 구시대 청산의 일환으로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보내자’는 주장을 폈다가 반대세력의 저항에 부닥쳐 국보법 폐지에 실패한 건 물론이고 지도력에도 상처를 입은 적이 있다. 문 대통령이 적폐 청산의 시동을 걸자 야당이 반발하고 있다. 국가적 갈등으로 번지지 않고, 폐단을 해소하는 치밀한 전략을 갖고 있으리라 믿는다. 아울러 노 전 대통령은 밤에도 키보드를 치는 이른바 ‘댓글정치’로 논쟁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지지자들은 탈권위 상징이라며 반겼지만, 대통령의 권위 상실로 귀결된 측면이 강하다. 문 대통령이 최근 세월호 관련 기사에 댓글을 남겼다. 댓글을 달기 전 참모들의 의견을 구한 점이 노 전 대통령과 달랐지만, 지지자들을 상대로 한 ‘댓글정치’는 지양하는 게 좋을 듯하다. 괜한 분란을 일으킬 수 있다. 김진홍 논설실장 j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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