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민태원] 암 환자 아버지의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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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에서-민태원] 암 환자 아버지의 절규

말기 암 환자 가족의 절박감 악용 많아… 검증되지 않은 치료행위 폐해 근절해야

입력 2017-05-14 17:31 수정 2017-05-14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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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살릴 수 있다기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2000만원이나 보냈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는 절규에 가까웠다. 광주광역시에 사는 한상이씨로부터 이메일을 받은 건 지난 6일. 최근 치명적인 복어 독을 암 특효약으로 불법 제조·판매한 업자가 붙잡혔다는 기사를 보고 혹시나 도움받을 수 있을까 해서 글을 썼다고 했다.

그가 들려준 가슴 아프고 잔인한 사연은 이랬다. 한씨는 지난 3월 16일 대장암 말기였던 큰아들을 갑작스레 하늘나라로 떠나보냈다. 아들은 올해 서른두 살이었다.

한씨는 지난 1월 말 늦은 밤 한 통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았다. 말기 암 아들의 상태를 알려주고 전신사진을 보내주면 치료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을 박모 한의사라고 소개했다. 귀가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한씨 아들은 3년 전 대장암 수술을 받고 별문제 없이 지내다 지난해 10월 재발했고 암이 전신으로 퍼져 병원에선 더 이상 손쓸 수 없는 상태였다. 절박한 마음에 아버지는 인터넷을 뒤져 말기 암에 좋은 자연요법을 찾는다는 댓글을 남겼고, 그걸 보고 연락해 온 것이었다. 그 한의사는 산삼약침으로 말기 암과 난치병 환자를 치료한다는 입소문이 나 있었다. 한의사는 “아드님 눈빛이 살아있다. 60% 확률로 살릴 수 있다”며 서울에서 왕진을 갈 테니 왕진비 100만원을 내라고 했다. 어려운 형편을 얘기해 50만원으로 깎았다. 다음 날 한의사는 성분을 알 수 없는 환약과 과립형 비타민제를 싸 들고 한씨의 집을 찾아왔고, 아들에게 환약을 한 번에 2∼5알씩 하루 3번 먹이라고 했다. 무슨 성분의 약인지 물었더니 환약은 암을 녹이고 비타민제는 암을 씻어낸다고만 말해 줬다. 그리고는 완치시켜 줄 테니 1억원을 달라고 요구했다. 한씨는 집안 형편상 2000만원밖에 쓸 수 없다고 했고, 그걸 한의사의 지인 5명의 통장으로 쪼개서 송금해줬다. 의심이 들긴 했지만 아들이 오래 살 수 있길 바라며 다른 자녀의 학교 등록금까지 당겨서 보내줬다.

그러나 아들의 상태는 환약과 알 수 없는 여러 약제를 먹을수록 좋아지기는커녕 더 나빠졌다. 말기였지만 이전에는 시장도 가고 가벼운 산책도 했는데, 점점 복수가 차 배가 풍선 2개 크기만 해져 아예 집안에 드러눕게 된 것. 결국 20여일 만에 병원으로 옮겼으나 한 달여 만에 숨졌다. “효과 없으면 돈을 돌려주겠다”는 약속은 빈말이었다. 차일피일 미루다 얼마 전부턴 연락조차 끊고 있다고 한다. 자식을 살려보려다 재산까지 잃게 된 한 아버지의 한숨이 멀리서도 느껴졌다.

말기 암 등 난치병 환자·가족의 기적을 바라는 절박함을 악용하는 이런 비윤리적 행위는 의료가 아니라 명백한 범죄다. 대한한의사협회에 확인 결과 박 한의사는 올 1월 초에도 줄기세포로 불법 암 치료를 한다며 방송에 보도돼 현재 검찰과 보건 당국의 조사가 진행 중이었다. 그는 2012년에도 엉터리 치료를 하다 한의사 면허를 박탈당했고 지난해 다시 자격을 취득한 것으로 드러났다. 말기 암 환자 등을 울리는 사기 범죄는 종종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최근 복어환 불법 암 치료를 비롯해 대구에선 ‘단식·관장으로 45일 만에 말기 암을 고쳐준다’며 무면허 의료시설을 운영한 부부가 붙잡히기도 했다. 물론 1차적으로 환자와 가족이 조심해야 한다. 의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치료법은 더 큰 고통을 겪을 수 있어 결코 믿어선 안 된다. 하지만 더욱 필요한 건 의료라는 허울로 사익을 취하려는 악덕업자, 특히 ‘불량 의료인’이 다시는 사회에 발붙이지 못하게 법·제도를 강화하는 것이다.

민태원 사회부 차장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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