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동 칼럼] 새털처럼 가벼운 게 민심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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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동 칼럼] 새털처럼 가벼운 게 민심인데…

“국가경영도 지속가능해야 한다. 거창한 구호나 성급한 성과는 기대하지 말아야”

입력 2017-05-16 17:46 수정 2017-05-17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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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나라냐’라는 자조에서 시작된 광장의 함성은 문재인정부를 탄생시켰다. 장미대선의 화려한 마무리다. 광장의 함성에 대한 서로 다른 견해는 차치하더라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정권을 교체했으니 의미가 남다르다. 모두 환호작약했다.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 수 있게 됐다며 찬양일색이다. 새 정부도 낮은 자세로, 그리고 함께하는 모습으로 화답했다. 와이셔츠 입고 테이크아웃 커피잔 든 대통령이 이렇게 멋있을 줄이야.

이제 잔치는 끝났다. 마냥 기뻐하기엔 현실이 녹록지 않다. 시급한 과제가 너무 많고 중차대하기 때문이다. 잔칫집에 재 뿌리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당장은 모든 게 멋지게 보일 수 있다. 더욱이 무혈로 쟁취한 민주주의 아닌가. 벅찬 감동은 작은 실수에도 실망으로 변할 수 있으며, 반복되면 분노가 될 수 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게 세상이치다. 급하거나 뭔가를 보여주려고 집착하면 실수하기 쉽다. 결과는 과정의 끝일 뿐 그냥 뚝딱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칫했다간 승자의 저주로 변할 수 있다.

임기 5년은 결코 길지 않다. 임기 내에 역사를 바꿀 의도로 거창한 구호를 내세우지 마시라. 역사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5년에 끝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지속돼야 할 역사에 5년의 임기는 연결고리일 뿐이다. 재임 기간 동안 상징적 결과물을 내놓으려다 제 발등 찍는 결과를 빚은 전임 대통령의 전철을 밟아서야 되겠는가. 가깝게는 ‘창조경제’가 그랬고, ‘자원외교’도 비슷했다. 뜻도 괜찮았고, 의지도 좋았지만 의욕이 지나쳤던 게 문제였다. 기업과 마찬가지로 국가도 지속가능한 경영을 해야 한다.

대선 공약도 이런 관점에서 꼼꼼히 따져보자. 문 대통령의 정책공약집 ‘나라를 나라답게’는 무려 387쪽에 달한다. 178조원짜리 약속이다. 요약하면 먹고사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인데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다. 4대 비전과 12대 약속, 201개 실천과제를 담고 있다. 이대로만 된다면 ‘천국’이 따로 없다. 공약은 집권플랜이자 국정운영플랜이다. 각각의 공약은 의미가 있고, 당위도 있다. 그러나 전체로 보면 무조건 맞는다고 할 수 없다. 합성의 오류는 국가경영에서도 통용된다. 물론 공약은 가능하면 지키는 것이 옳다. 그렇다고 무조건 얽매여서도 안 된다. 현실성이 없거나 부작용이 크면 고치는 게 용기다. 의도가 선하다고 결과 또한 선하다고 할 수 없다. 잘못된 정책으로 인한 폐해는 두고두고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국가경영은 현실이다. 당위론만으로 운영할 수 없다. 뜨거운 가슴으로 공약을 만들었지만 그 실천은 냉철해야 하는 이유다.

더욱이 새 정부의 앞날은 꽃길이 아니다. 오히려 가시밭길이다. 안으로는 경제적 양극화, 사회적 갈등, 이념적 대결이 깊어지고 있고 밖으로는 거센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대통령의 카운터 파트너인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 모두 노회하면서도 거친 상대다. 북쪽 김정은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존재다. 피할 수도 없고, 피해서도 안 되는 현실이다.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 최적의 선택을 하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다.

우리에겐 성공의 역사도 있고, 실패의 역사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성공에 집착하면 실패할 확률이 더 크고, 최악의 경우 불행해진다는 것을 경험한 바 있다.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고, 강물도 강을 버려야 바다에 이른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제 겨우 취임 일주일이 지났을 뿐인데 너무 급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운전도 과속하면 사고 나듯이 국정이라고 다를까. ‘몇 호 업무지시’라는 말엔 권위주의 냄새가 난다. 듣기 거북하다. 새털처럼 가벼운 게 민심이라 했는데….

hd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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