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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김영석] 묏비나리

입력 2017-05-18 18:32 수정 2017-05-18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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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이여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라/ 갈대마저 일어나 소리치는 끝없는 함성/ 일어나라 일어나라/ 소리치는 피맺힌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산자여 따르라.”

‘임을 위한 행진곡’과 닮아 있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묏비나리-젊은 남녘의 춤꾼에게 띄우는’이라는 시의 일부다. 15장으로 구성된 장시(長詩)다. 뫼는 산을 뜻하고, 비나리는 행복을 빈다는 말로 우리 강산을 위한 기원 정도로 해석 가능하다.

백 소장은 지난 1979년 YWCA 위장결혼식 사건 주모자로 붙잡혀 서빙고동 보안사 수사분실에서 고문을 당했다. 허리는 망가졌고, 무릎은 퉁퉁 부어 꿇을 수조차 없었다. 종이와 연필은 사치였다. 백 소장은 회상한다. “내가 입으로 쓴 시야. 감옥 천장에 눈으로 쓴 시야”라고. 80년 12월 서대문 구치소에서 완성된 이 시는 고문 후유증으로 한양대 병원에 입원했을 당시 라면봉지 등에 깨알만한 글씨로 적혀 후배들에 의해 외부로 전해졌다. 이후 소설가 황석영의 개사와 문화운동가 김종률의 작곡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으로 재탄생했다.

백 소장은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 전부다. 64년 한일회담 반대 운동을 시작으로 촛불집회까지 약자가 있는 공간이면 어디든 찾아가 맨 앞에서 섰다. 우리나라에서 최루탄을 가장 많이 마신 이가 자신이라고 주장한다. 74년 긴급조치 1호의 첫 위반자다. 두 차례 출마 경력의 대선 후보이기도 하다. 87년엔 김대중-김영삼 후보 단일화를 촉구하며 중도 사퇴했고, 92년엔 23만여표(1%)를 얻었다.

백 소장은 18일 광화문광장을 찾았다. 5·18 기념행사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힘차게 제창했다. 축구선수가 꿈이었던 85세 ‘사자 머리 한복 투사’는 광장을 계속 찾으려 한다. 억압이 없는 세상 그날까지. 묏비나리의 마지막 구절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메시지를 던져준다. “언 땅을 어영차 지고 일어서는/ 대지의 새싹 나네처럼/ 젊은 춤꾼이여/ 딱 한발 떼기에 일생을 걸어라.”

김영석 논설위원, 그래픽=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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