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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영 칼럼] 유방암 이기고 보훈처장 된 피우진

“피 처장 파격 임명은 소통의 일환… 새 정부 성패는 소통에 달렸음을 명심해야”

입력 2017-05-18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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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대행소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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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아프다. 서울의 큰 병원에서 위암 수술을 받고 입원 중이다. 80대 고령인 데다 병기(病期)가 간단치 않아 환자와 보호자 모두 사소한 예후 변화에도 노심초사한다. 남들이야 “그 연세면 됐다”고 할지 모르지만 지천명을 넘긴 내게도 엄마는 여전히 늘 옆에 있어야 하는 존재다. 그래서 ‘암 환자 엄마’는 낯설고 불쌍하다.

엄마가 있는 5인실 병실의 나머지 환자는 유방암을 앓고 있다. 나는 암에 관해 상식 이상으로 아는 게 없다. 유방암에 대해서도 물론 무지하다. 그런 내가 보기에 유방암 환자는 ‘암 환자가 맞나’ 싶다. 입원에서 수술, 퇴원에 이르기까지 대략 일주일이면 끝이다. 수술 후 하루 만에 식사와 보행이 아프기 전 수준으로 회복되는 것 같았다. 가슴을 절제한 지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보호자가 가져온 제육볶음에 채소 쌈을 싸먹고는 운동 간다며 씩씩하게 병실을 나서는 환자도 있다. 한 달 가까이 침대에 누워 있는 엄마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국가보훈처장에 피우진 예비역 육군 중령을 임명한 것이 화제다. 장성 아닌 영관급 출신에다 최초의 여성 처장이란 점 때문이다. 그가 세상에 알려진 계기는 유방암이다. 가슴절제 수술을 받은 유방암 환자란 이유로 강제 전역을 당하자 법정 투쟁을 했고 결국 2008년 승소해 군에 복직한 사실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그때는 몰랐는데 요즘 보니 유방암은 다른 암에 비해 회복이 빠르고 일상 적응도 빨랐다. 현역 복무에 아무런 지장이 없는데도 암 환자라는 이유만으로 자동퇴역시킨 당시 군인사법의 무모함이 놀랍다.

피 처장에다 임종석 비서실장, 조국 민정수석 등 문 대통령은 파격 수준의 인사를 잇따라 단행했다. 호남 총리 약속을 지키는 등 화합에 진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측근 인사들의 백의종군 결단은 신선함을 더했다. ‘*호’라는 게 따라붙어 어색하긴 하지만 업무지시의 내용도 그만하면 괜찮다. 일각의 우려가 있지만 광속을 내는 정책 행보 역시 바람직한 듯하다. 바른정당 이혜훈 의원은 “무서울 정도로 굉장히 잘한다”고 극찬했다.

문 대통령의 정책방향은 대선 기간 중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프랭클린 델라노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을 꼽았을 때 이미 알아봤다. 그는 “진보적이면서 통합적인 리더십이 존경스럽다”고 했다.

피상적으로 알려진 루스벨트는 ‘테네시강 유역 개발공사(TVA)’ 등 대규모 토목공사를 통해 미국 경제를 부흥시킨 인물이다. 그의 진가는 다른 여러 부문에서 그 이상의 가치를 드러냈다. 루스벨트는 독점 대기업 규제, 공정거래법 도입, 사회보험 실행 등 사회경제 개혁에 집중했다. 진보 성향은 노동자 권리 구제에서 도드라졌다. ‘와그너법’을 만들어 노동자들이 노조결성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갖도록 했다. 그의 집권 기간 미국은 빈부격차가 가장 완화된 ‘대압착(Great Compression) 시대’를 맞았다. 중산층이 대거 생기면서 ‘소비가 미덕’인 미국 역사상 최대의 풍요를 구가했다.

그러나 루스벨트가 4선의 위업을 이룬 배경의 핵심은 소통이다. 그는 ‘노변정담’으로 불리는 라디오 방송을 통해 늘 국민과 대화했다.

문 대통령도 지금까지는 비교적 국민과 무난하게 소통하는 것으로 보인다. 새 정부 성공 요인의 하나가 소통임을 전 정권의 전비(前非) 를 통해 제대로 배웠을 것이다. 피 처장 임명도 특정 이데올로기에 갇힌 보훈처의 벽을 깨고 보훈가족은 물론 국민과 소통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싶다. 내 처지 때문일까, 여러 고위직 인사 중에 암 환자 병력의 피 처장 임명에 새삼 눈길이 간다.

정진영 논설위원 jy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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