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트렌드] ‘국회 톡톡’… 입법의 문이 열렸다

국민일보

[And 트렌드] ‘국회 톡톡’… 입법의 문이 열렸다

시민-국회가 통하다… 시민입법플랫폼의 등장

입력 2017-06-09 05:01 수정 2017-06-10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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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과의 소통은 한결 쉬워졌다. 소셜미디어로 친구를 맺고 카카오톡으로 일대일 대화도 한다. 반면 국민이 법을 제안하는 입법청원 제도는 사실상 휴면 상태다. 지난 19대 국회에 접수된 입법청원은 모두 224건이었지만 본회의에 상정된 것은 단 2건(0.9%)이었다. 정당이나 시민단체에 가입하지 않은 시민은 청구 단계부터 엄두가 나지 않는다. 시민입법플랫폼 ‘국회톡톡’은 그래서 탄생했다. 네티즌의 지지를 바탕으로 시민과 의원이 함께 법을 만든다. 지난해 10월 5일 개설된 뒤 벌써 국회의원 19명이 시민 제안에 응답해 ‘입법 드림팀’을 꾸렸다. 온라인 정치 혁신은 이제 시작이다.

국회톡톡 3단계… 제안→매칭→발의

국회톡톡은 정치 스타트업 ‘와글’과 개발자 협동조합 ‘빠흐띠’가 개발했다. 이들은 시민의 입장에서 입법청원 제도를 세 단계로 단순화했다. ⓛ네티즌이 법안을 제안한다. ②하나의 제안이 1000명 이상 지지를 받으면 국회 해당 상임위원회 의원들의 이메일로 전달된다. ③2주 안에 관심을 보이는 국회의원이 나타나 ‘매칭’이 이뤄지면 온·오프라인에서 국회의원과 시민이 함께 입법 활동을 벌인다.

제안된 법안에 국회의원들이 보이는 반응은 ‘참여/거부/무응답’으로 구분해 공개된다. 법이 만들어지는 모든 과정이 타임라인 형식으로 정리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입법 단계에 들어서면 시민들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자유롭게 토론을 벌이는데, 여기에는 국회의원과 보좌진도 참여한다.

내 생각이 정말 법으로? “됩니다”

8일 현재 국회톡톡에 올라온 법안은 219건. 그중 7건이 3단계인 입법 활동에 돌입했고 2건이 의원 매칭 단계에 있다. 주요 법안(지지자 1000명 이상)에 서명한 네티즌 수는 3만4800명에 달한다. 국회톡톡에 응답한 의원들은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자유한국당에 고루 분포돼 있다.

국회톡톡에 첫 번째로 올라온 입법 제안은 ‘15세 이하 어린이 병원비 국가 보장’ 법안이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사회복지사 옥정은씨는 의료지원 사각지대에 놓인 어린이·청소년과 그 부모들의 사연을 제시하며 “모든 아이는 건강하게 자랄 권리가 있고 국가는 이 땅의 모든 아이를 건강하게 키울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이 법안은 천정배 국민의당 의원을 시작으로 오제세 남인순 기동민 민주당 의원, 윤소하 정의당 의원과 매칭됐다. “아이들은 미래의 봄”이라고 응답 메시지를 보낸 윤 의원은 이미 지난해 6월 15세 이하 어린이 병원비를 국가가 책임진다는 내용의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을 발의했었다. 윤 의원은 국회톡톡에 제안이 올라온 후 국회 본청에서 ‘어린이 병원비 당사자 증언대회’를 여는 등 어린이병원비국가보장추진연대와 함께 다양한 입법 촉구 활동을 펼치고 있다.

자신을 ‘평범한 직장인이자 한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이라고 소개한 시민은 “1년에 80% 이상 출근한 근로자에게 15일의 유급휴가를 부여해 달라”고 제안했다. ‘신입사원 연차보장 법안’이었다. 이 제안은 1700여명의 지지를 받아 한정애 민주당 의원, 이정미 정의당 의원과 매칭에 성공했고, 지난 1월 제안 내용을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으로 탄생했다. 지난 2월에는 법안을 발의한 한 의원과 서명에 참여했던 시민들이 소통하는 오프라인 간담회도 열렸다.

‘몰래 카메라(몰카) 판매 금지법’은 가장 뜨거운 호응을 얻은 법안이었다. 지난 4월 6일 게시된 지 2시간30분 만에 의원 매칭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목표인원 1000명을 돌파했다. 이틀 만에 참여자 1만명을 훌쩍 넘겼다. 국회톡톡 운영자는 와글 블로그에서 “이틀 동안 접속자가 몰리면서 서버는 다운되고 ‘멘붕’ 상태에서 종일 노트북과 씨름해야 했다”고 회상했다.

국회의원들도 적극적이었다. 제안 3일 만에 진선미 민주당 의원이 응답한 데 이어 김영호 박남춘 남인순 권미혁 민주당 의원이 입법 참여 의사를 밝혔다. 진 의원은 당시 “제가 발의했던 ‘리벤지포르노 처벌법’이 계류 중인 상황에서 이런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해준 점에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법안을 제안한 디지털성폭력대항단체 ‘디지털성폭력아웃(DSO)’은 입법 활동 단계로 들어선 후 페이스북 그룹과 ‘빠띠’라는 오픈 커뮤니티를 통해 시민들과 의견을 나누고 있다. 성범죄 관련 법안이 개정되면 이곳에서 빠르게 정보가 공유된다. 몰카 피해자라고 밝힌 한 네티즌은 “피해자가 영상을 캡처해 문서로 제작해야 하는 채증 방식은 문제가 있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법안 제안자가 국회의원이 주최하는 토론회에 발제자로 참여하는 사례도 나왔다. 가장 최근 의원 매칭에 성공한 ‘웹소설 유통사 수수료 상한제 법안’은 12일 서울시와 김병욱 민주당 의원이 공동 주최하는 ‘문화예술 정책토론회’를 끌어냈다. 이 법안을 제안한 웹소설 작가는 이 토론회에 발제자로 나설 예정이다.

법안 발의, 끝이 아닌 시작

국회톡톡에 올라온 시민 제안은 대부분 평범한 일상에서 시작됐다. ‘이건 좀 고쳤으면 좋겠는데’ ‘이건 법으로 보장해줬으면 좋겠는데’라는 생각의 씨앗이 모여 풀뿌리 민주주의의 싹을 틔웠다.

와글은 국회톡톡 법안이 매칭 단계에 들어가면 해당 상임위 의원실을 직접 방문해 제안 내용을 설명하고 참여를 도왔다. 와글 측은 운영 8개월째로 접어들면서 대다수 국회의원이 국회톡톡을 인식하고 있다고 봤다. 국회톡톡이 시민입법 플랫폼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물론 법안 발의는 시작에 불과하다. 국회의안정보시스템을 통해 20대 국회 출범 첫해(2016년 5월 30일∼12월 31일)를 집계한 결과 의원 발의 법률안(대표·공동발의 포함)은 총 4258건이었다. 이 중 처리된 법안은 437건으로 평균 법안처리율은 9.73%에 불과했다. 10건 중 9건은 계류 중이라는 의미다.

법안이 통과되려면 온·오프라인 토론회와 공청회에 참여하고, 지역구 의원에게 법안 통과를 요청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시민들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 국회톡톡 기획자이자 운영책임자인 오진아 매니저는 “상임위에 ‘높은 수요가 있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일련의 모든 행동이 의미가 있다”며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가 필수”라고 말했다.

글=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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