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영 칼럼] 한승희 국세청장 후보자의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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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영 칼럼] 한승희 국세청장 후보자의 경우

입력 2017-06-13 17:18 수정 2017-06-13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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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진이다. 일이 주어지면 앞만 보고 간다.”

국세청장 후보자로 지명된 한승희 서울지방국세청장에 대한 임환수 국세청장의 평가다. 퇴임을 앞둔 그와 통화하면서 그동안의 노고 등 덕담을 나누는 한편 간간이 한 후보자를 탐색했다. 내밀하게 일을 처리하는 조사국에 오래 근무한 까닭에 한 후보자는 언론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임 청장은 한 후보자를 누구보다 잘 안다. 행정고시는 5회나 아래지만 둘은 서울대 1981년 입학 동기다. 조사국 근무 경력이 많은 것도 공통점이다. 임 청장은 맡은 일은 철저히 하며 반드시 성과를 내는 한 후보자를 많이 챙겼다. “옛날 우리 선배들과는 완전히 다른 스타일”이라는 임 청장의 첨언 한마디가 한 후보자의 특성을 함축한다. 한 후보자가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 임 청장의 지원은 큰 힘이 됐다.

사실 의외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세청장에 한 서울청장을 내정한 데 적잖이 놀랐다. 그의 자질이나 역량이 적격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문 대통령의 인사 행태가 그렇다는 뜻이다. 문 대통령에게 국세청이 어떤 조직인가. 정치적 동지이자 삶의 멘토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몬 단초인 정치적 세무조사가 이뤄졌던 곳 아닌가. 새 정부의 핵심 정책인 일자리 를 위해 대기업을 압박할 수 있는 가장 유용한 기관이지 않나. 코드가 맞는 이른바 비국세청 출신 ‘문빠’를 점령군으로 보내 국세청을 일거에 장악하리라 내다봤던 내 시야가 좁았음을 느꼈다.

과거를 돌아보자. 정권이 바뀔 때면 국세청장 자리를 둘러싼 암투가 치열했다. 노무현정부 탄생 당시 국세청 차장과 서울청장의 지저분한 이전투구와 이명박정부 출범 이후 연임을 노린 한상률 청장의 대통령 형 이상득 로비와 노 전 대통령 압박용 태광실업 세무조사는 대표적 사례다. 몸부림치며 국세청장 자리를 얻어낸 반대급부는 뻔하다. 정권의 입맛에 맞는 표적 내지 기획 세무조사로 보답하는 것이다.

한 후보자는 그런 측면에서 문 대통령에게 정무적 빚이 적다. 청와대가 국세청 내부 인사 가운데 최적의 인물이라고 고른 것일 뿐이다. 경기 출신으로 지역적 부담이 없는 데다 세무조사 전문가라는 특성이 많이 반영됐을 것이다. 청와대는 “대표적인 조사통”이라며 인사배경을 설명했다.

그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자기 관리가 철저한 원칙주의자’라는 것이 몇몇 국세청 전·현직의 전언이다. 윗사람들은 능력이 뛰어난 그를 많이 아꼈다. 특히 한상률 청장은 요직인 조사기획과장에 중용했고 이후 비교적 관운이 잘 풀렸다는 얘기가 들린다. 부정적 인식도 있다. 납세자의 입장을 잘 경청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울국세청 조사4국장 시절 기업 관계자가 회사 입장을 설명하려 해도 잘 만나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압적인 관료’라거나 ‘꽃길만 걷는 사람’으로 혹평하는 이도 있다.

돌발 상황이 일어나지 않는 한 국회 청문회는 잘 통과할 것이다. 그가 국세청장이 될 경우 풀어야 할 가장 큰 숙제는 정치적 세무조사 문제다. 임명직인 국세청장이 권부의 뜻을 거스른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할지 모른다. 그렇더라도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기 위해 자리를 내놓을 수 있다는 옹골찬 각오를 처음부터 다져야 한다. 아니면 ‘알아서 한상 차려 올리는’ 선배들의 구태를 반복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개인의 소신으로 힘들다면 제도를 통해 스스로를 규율하는 방안도 있다. 국세청을 통제하기 위한 국가세무위원회 신설 등 외부감독기구 논의가 설왕설래된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기업인 등 납세자들과도 더 잘 소통했으면 좋겠다. 국세청의 영문 이름(NTS) 중 ‘S’는 ‘서비스(service)’의 약자다. 엄정히 걷되 고충은 듣는 면모가 필요하다. 국세청장의 힘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다. 납세자인 국민으로부터 잠시 빌린 것이라는 점을 늘 성찰해야 성공한 국세청장이 될 수 있다.

정진영 논설위원 jy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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