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원준 칼럼] 부동산의 ‘상식’

국민일보

[태원준 칼럼] 부동산의 ‘상식’

입력 2017-06-27 19:10 수정 2017-06-27 19:32
취재대행소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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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도 더 된 일인데, 이사를 해야 했다. 낯선 동네를 찾아가 눈에 띄는 부동산에 들어갔다. 오십이 넘어 보이는 아주머니 혼자 앉아 있었다. 집을 구한다 했더니 공책을 펼쳐 들었다. 책상에 분명히 놓여 있던 컴퓨터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모나미 볼펜을 딸깍거리며 한 장씩 넘기던 공책은 한글과 숫자, 여러 겹의 밑줄이 어지럽게 섞여 있었다.

아주머니는 한 집을 추천했다. 보여주겠다며 주인에게 전화를 걸려는데 선이 잔뜩 엉켜 있어 수화기가 귀에 닿지 않았다. “이게 왜 이러지” 하면서 그걸 푸느라 한참, “그 집 번호가…” 하며 공책에서 전화번호 찾는 데 또 한참, 막상 연결되니 집주인과 수다 떠느라 다시 한참이 지나서야 집 보러 와도 좋다는 말을 들었다.

보는 둥 마는 둥 하고 두 번째로 간 중개소에선 다른 아파트를 추천했다. 의자에 앉으니 정면에 커다란 지도와 단지 배치도가 걸려 있었다. 중개사는 프레젠테이션용 레이저 포인터로 지도에 빨간빛을 비춰가며 설명했다. 논리로 무장한 영업인의 말은 반박하기 어렵고, 세련됨이 더해지면 예상치 못한 믿음이 생긴다. 나는 그가 권한 집으로 이사했다.

낯선 동네의 지형지물과 생활패턴을 익히는 데 6개월쯤 걸리는 것 같다. 전화선이 엉켰던 중개사가 추천한 집이 그 동네에서 가장 살기 좋은 입지를 가졌다는 사실도 6개월이 지나서 알게 됐다. 발품을 팔라는 건 이런 시행착오를 줄이라는 뜻이었다. 몇 년 뒤 다시 이사하게 됐을 때 이번엔 ‘손품’이라도 팔자는 생각에 인터넷을 뒤졌다.

당시 들락거린 인터넷카페 2곳이 지금도 ‘즐겨찾기’에 들어 있다. 부동산 정보를 공유하는 두 카페의 운영자 성향은 정반대였다. 한 곳은 주로 낙관론을 설파했고, 다른 곳은 ‘미스터 둠’이라 불러도 모자람이 없었다. 부동산 과열이란 말이 다시 등장한 요즘, 그래서 새 장관이 투기 근절을 선언한 지금, 두 카페의 ‘낙관씨’와 ‘비관씨’는 뭐라 말하는지 궁금했다.

부동산 카페의 게시물 건수는 부동산 경기와 정확히 비례한다. 두 카페 게시판을 훑어보니 시장이 냉각기에 접어든 지난해 11월부터 글이 확연히 줄었다가 지난 4월 다시 급증하기 시작했다. 비관씨 카페는 집을 사려는 사람이, 낙관씨 카페는 팔려는 사람이 많아 보였다. 집을 사려면 집값이 떨어져야 좋고, 팔려면 올라야 좋다. 부동산 소비자는 필요한 정보보다 희망하는 정보를 찾는 경향이 있다.

비관씨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분석적인 글을 많이 올려놓았다. 미국 금리인상, 대선주자 공약 등을 지적하며 어두운 시장을 예측했다. 반면 낙관씨는 냉각기에 접어든 뒤에도 대세상승론을 굽히지 않았다. 새로운 상승을 위해 힘을 비축하는 중이어서 다가올 상승장은 더 폭발적일 거라고 했다. 지난가을부터 올봄까지는 비관씨가 옳았고, 지금 보면 낙관씨 말처럼 되는 듯한데, 새 장관의 정책이 장차 누구 손을 들어줄지 알 수 없다.

두 사람은 같은 사안을 정반대로 봤다. 미국 금리와 주택 수급이 대표적이다. 비관씨는 ‘미국 금리인상→한국 금리인상→부동산 위축’을, 낙관씨는 ‘미국 금리인상=미국 경제회복→한국 경기호조’를 말했다. 한쪽이 박근혜정부에서 쏟아낸 분양 물량을 걱정하며 공급 과잉을 지적하는 동안 다른 쪽은 큰 틀에서 여전히 공급 부족이라 주장했다.

이렇게 정반대 논리가 통용되는 시장은 결코 논리적이지 않다. ‘강남불패’부터 ‘냉·온탕 시세 추이’까지 우리가 아는 부동산 ‘상식’은 상식적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부동산시장이 가장 비상식적으로 움직인 건 노무현정부 때였다고 기억한다. 노선이 비슷한 문재인정부가 이제 그 시장을 마주했다. 근본 해법은 ‘사는 것’에서 ‘사는 곳’으로 집을 보는 시선이 바뀌는 것일 텐데, 단시일에 가능하지 않다. 시장이 상식을 찾도록 장기 정책을 세워놓고, 올라도 적당히 오르고 내려도 적당히 내리게 지금은 관리만 잘해도 성공이란 생각이 든다.

태원준 온라인뉴스부장 wjtae@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