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로스 루트를 가다] 루터 獨語성경처럼… 한글성경 ‘복음의 능력’ 펼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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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로스 루트를 가다] 루터 獨語성경처럼… 한글성경 ‘복음의 능력’ 펼치다

① 중국 선양 동관교회

입력 2017-06-29 00:01 수정 2017-07-03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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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로스 선교사가 세운 중국 랴오닝성 선양시 대동문 인근의 동관교회 전경. 1900년 의화단 사건 때 전소됐다가 1907년 다시 세워진 건물이다. 예배당 본당 건물 외벽에 ‘복음적 희년’이란 플래카드가 걸려 있고, 아래 파란색 천막에는 ‘하나님이 세상과 인간을 사랑하신다’는 뜻이 담긴 ‘神愛世人’(신애세인) 글귀가 십자가와 함께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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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주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소장이 지난 26일 오전 동관교회 예배당에서 존 로스 루트 답사팀원들에게 이 교회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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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가 한글로 번역한 신약성경을 인쇄·출판했던 문광서원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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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로스 루트 답사팀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중국 랴오닝성 선양(瀋陽)의 동관교회였다. 로스가 세운 지 120여년이 지난 교회로 최초로 한글성경을 번역해 출판했던 그의 문서선교 사역을 더듬어볼 수 있는 곳이다.

지난 26일 오전 선양시 대동문 인근의 동관교회. 예배당에 들어선 방문객들의 시선이 강대상 뒤쪽에 쏠렸다. 보라색 커튼 뒤에 1m 높이의 검푸른 비석이 눈에 띄었다. ‘예배당에 웬 비석이 있을까’ 궁금했는데, 목회자를 향한 성도들의 사랑과 존경의 표시라고 했다. 현역에서 은퇴한 로스가 1915년 에든버러에서 소천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동관교회 성도들이 그를 향한 고마운 마음을 담아 비석 형태로 교회 벽에 새겨 넣은 것이다.

동관교회가 건립된 건 로스가 중국에서 사역한 지 18년째인 1889년이었다. 800명 가까이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당시 만주 지역에서 가장 큰 기독교 예배당이었다. 하지만 1900년 ‘서양세력을 몰아내자’는 구호를 내건 의화단 사건으로 전소됐다가 1907년 지금의 형태로 재건됐다.

현재 동관교회는 중국 정부의 공식 인정 교회인 삼자교회(중국기독교 삼자애국운동위원회)이면서 한족교회다. 조선족 동포인 오명봉(51·여) 목사가 담임을 맡고 있다. 이 교회 관계자는 “출석 성도는 3만명 정도로 주일에만 다섯 차례 예배를 드리고 있다”면서 “선양을 대표하는 가장 큰 교회”라고 전했다. 푸른 눈의 이방인이 전한 낯선 복음이 풍성한 열매를 맺은 것 같았다.

예배당 옆에는 1층짜리 작은 회색 건물이 있다. ‘조선글성경번역유적지’(문광서원)라고 적힌 이곳은 로스가 1882년부터 한글성경을 인쇄·출판했던 장소를 기념하기 위해 조성된 공간이다. 당시 상황을 떠올릴만한 유물은 거의 남아있지 않지만 이 공간이 주는 의미는 특별하다.

중국에 들어온 로스는 당시 쇄국정책으로 신·구교 선교사들을 극심하게 박해했던 조선의 상황을 접했다. 1876년에는 의주 상인 이응찬을 만나 그를 어학선생으로 삼아 한글을 배우며 한글성경번역에 나선다.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는 “존 로스는 ‘흑암에 사는 1200만 영혼’을 위해 한글로 성경을 번역해야 한다는 강렬한 사명감에 불타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로스는 인쇄와 출판이 가능한 공간을 마련했는데 그곳이 바로 문광서원이었다. 1882년 3월에 누가복음, 5월에 요한복음을 번역하는 등 4복음서와 사도행전, 로마서와 빌립보서 등을 차례로 번역해 출간했다. 드디어 1887년에는 신약성경 전서인 ‘예수셩교젼셔’ 5000부를 간행했다. 가로 12.5㎝, 세로 20.5㎝ 크기의 399쪽짜리 신약 성경이 나오기까지는 거의 10년이 걸렸다.

한글성경 번역이 이뤄지던 시기에는 '복음의 능력'도 나타났다. 이응찬 백홍준 김진기 서상륜 등 한글 번역에 참가한 이들 상당수가 한국 최초 개신교인으로 이름을 올리는 등 복음을 받아들이고 세례를 받은 이들이 다수 생겨났다. 이 같은 사실은 한국에 처음 복음이 들어온 시점을 언더우드·아펜젤러 선교사가 입국한 1885년보다 앞당길 수 있는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 이 교수는 "마르틴 루터는 종교개혁을 위해 독일어로 성경을 번역함으로써 독일어가 문자로 정착할 수 있는 기틀도 마련했다"면서 "존 로스의 한글신약성경 번역 역시 한국교회사에 영적으로 혁명적인 사건일 뿐 아니라 한글이 대중적 문자로 자리 잡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마천루가 곳곳에 들어서는 등 개발열풍이 불고 있는 선양에도 복음이 맺은 열매는 곳곳에 남아 있다. 로스가 사역하던 당시 의료 선교사였던 듀걸드 크리스티 선교사가 1883년 설립한 성징시병원은 선양의 최대 병원으로 우뚝 서 있었다.

이덕주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소장은 "선양은 오래 전부터 한국과 중국의 정치 군사 문화 경제 교류의 중심지였다"면서 "존 로스 루트에서도 성경이 한국으로 들어오는 복음의 관문 역할을 톡톡히 했다"고 강조했다.

선양=글·사진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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