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병상련 홀사모들 23년째 친정처럼 돌봐… 이에스더 원장과 어려움 이겨낸 홀사모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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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병상련 홀사모들 23년째 친정처럼 돌봐… 이에스더 원장과 어려움 이겨낸 홀사모들 이야기

입력 2017-06-29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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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스더 요나3일영성원장(왼쪽 네 번째)이 28일 서울 서대문구 영성원에서 15년 이상 생활비와 장학금을 지원해 준 홀사모들과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신현가 인턴기자
1983년 안양 갈릴리교회를 담임하던 장경환 목사는 45세의 이른 나이에 위암으로 소천했다. 서른여덟에 과부가 된 사모는 졸지에 어린 4남매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 됐다. 막막한 현실에 직면했지만 슬픔에 빠져있지만은 않았다. 남편의 ‘바통’을 이어받아 목회자의 길에 들어섰고 23년째 동병상련의 처지에 놓인 홀사모를 돌보는 대모가 됐다. 이에스더(71) 요나3일영성원장의 이야기다.

이 원장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목회자와 사모는 사역에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그동안 소중하게 여기던 돈과 명예를 모두 포기해야 한다”면서 “그런데 일선에서 목회하던 남편 목사님이 먼저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면 남아있는 사모와 자녀들은 아무런 대책 없이 길거리로 내몰리게 된다”고 말했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최선희(64) 사모가 고개를 끄덕였다. 최 사모는 “1991년 남편의 급작스런 죽음 이후 두 아이를 키우기 위해 아파트나 병원 청소는 물론이고 파출부, 학습교재 판매원, 도로공사 현장잡부까지 안 해본 일이 없다”고 했다.

남편 목회자의 소천 이후 사모들이 맞닥뜨리는 가슴 아픈 현실은 ‘교회 제직들이 목회자 유족을 부담스러워 한다’는 점이다. ‘죄가 많아 벌을 받았다’는 식의 소문이 교회에 돌거나 교인들이 사택을 빨리 비워주길 바란다는 이야기라도 들려오면 큰 상처를 받는다.

김희선(60) 사모는 “1998년 남편이 위암으로 소천했는데 장례예배를 마치고 나니 그때부터 성도들의 발길이 뚝 끊어졌다”면서 “대책도 없이 사택에서 나와야했고 그때 받은 충격 때문에 우울증과 공황장애까지 겪었다”고 회고했다.

이경자(59) 사모는 “2000년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뒤 교회 제직들이 보여준 냉담한 반응과 나쁜 소문에 큰 상처를 받았다”면서 “아이들 입장에서 교회는 아빠와 함께 생활했던 추억의 공간인데 후임목사와 성도들이 교회방문을 부담스러워 한다는 걸 눈치 채고 발길을 끊었는데 얼마나 서글펐는지 모른다”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이 원장은 홀사모들이 겪는 생활고와 자녀교육, 질병의 문제를 방치할 수 없어 1994년 홀사모선교회를 조직했다. 매년 홀사모 30가구를 선정해 생활비를 지급하고 자녀들에겐 장학금을 지원했다. 지금까지 후원한 총액만 11억2000만원이 넘는다.

김정희(64) 사모는 “1998년 남편의 갑작스런 소천 이후 삶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생활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일어설 힘도 없이 매우 힘든 시간을 보냈다”면서 “그때 원장님의 도움으로 아이들이 신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사모도 “갑자기 무일푼으로 길거리로 나왔을 때 친정집처럼 목 놓아 울 수 있는 곳이 바로 여기였다”고 회고했다.

윤명금(68) 사모는 “44세에 남편을 먼저 보내고 혼자 됐는데 답답함과 외로움을 이곳에 와서 털어 놓고 재충전을 한다”면서 “비록 남편이 먼저 떠났지만 끝까지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싶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끼니를 챙겨먹고 아이들을 대학에 보낼 수 있도록 조금만 도와준다면 홀사모가정도 얼마든지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귀띔했다. 그는 홀사모들이 생활전선에 뛰어들기보다 목회의 연장선상에서 복음전파에 나서는 게 이상적이라고 말했다. 이 원장은 “사명을 잃고 기근으로 목말라하는 홀사모들에게 다시 용기를 북돋워주고 그들이 소천한 남편과 함께했던 소명에 따라 청지기적 사명을 다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줘야 한다”면서 “불행을 당한 사명자의 가정에서 생명을 걸고 또다시 사명자의 길을 간다면 그것만큼 의미 있는 일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사진=신현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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