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최현수] 절차적 정당성 중요하지만

국민일보

[내일을 열며-최현수] 절차적 정당성 중요하지만

입력 2017-07-05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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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년 전 미국에서 공부할 때 인상 깊게 들었던 단어 하나가 ‘듀 프로세스(due process)’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절차적 정당성’이 적절할 것 같다. 개인이 지닌 권리를 최대한 존중하기 위해 국가가 일을 추진할 때는 정당한 절차가 준수돼야 한다는 의미다.

‘듀 프로세스’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나왔던 과목은 ‘미국 정치론’이었다. 매시간 이 단어가 거론됐고 교수와 학생들은 미 연방정부나 주정부가 실시한 정책에 대해 ‘듀 프로세스’를 거쳤느니 안 거쳤느니를 놓고 치열한 논쟁을 벌이곤 했다. ‘미국 역사’나 ‘남북전쟁사’는 물론 아테네와 스파르타 간 전쟁을 다룬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도 거론됐다. 미국민의 의식에 ‘듀 프로세스’ 즉 ‘절차적 정당성’의 중요성이 강하게 뿌리박혀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 후 회의 참석차 하와이를 방문했을 때였다. 회의에서는 작은 도로 개통 문제로 10년째 논란을 벌이고 있는 하와이 한 마을의 이야기가 화제가 됐다. 이 마을에서는 한두 명 주민이라도 불편하지 않게 하겠다며 도로 형태를 놓고 논의 중이라고 했다. 하와이주 관계자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당하게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절차적 정당성’의 중요성이 강의실뿐 아니라 실제 정책운용에서도 적용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에서 사드(THAAD) 배치에 대한 ‘절차적 정당성’을 강조한 것은 설득력 있는 전략이었다. 정부가 사드 배치 부지에 대해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는 것에 미국은 의혹이 크다. 한국이 결국 사드 배치를 철회할 수 있다고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문 대통령은 환경영향평가가 사드 배치 철회로 가기 위한 수순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 워싱턴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열린 ‘전문가 초청만찬’ 연설에서 “사드 배치에 관한 한국 정부의 논의는 민주적 정당성과 절차적 투명성이 담보되는 절차”라고 설명했다. 미국식으로 해석하자면 ‘듀 프로세스’를 적용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미국으로서는 반박하기 힘든 가치관을 거론한 것이다. 절차적 정당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행위의 목적마저 부인되는 경우가 없지 않다. 이는 민주주의의 가치이자비용이다.

사드는 배치 결정부터 부지 선정, 장비 반입까지 정상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배치 결정도 공론화 과정 없이 갑자기 이뤄졌고 부지 선정과 장비 반입도 기습적으로 실시됐다. 이 때문에 되돌릴 수는 없지만 지금이라도 정상적인 절차를 거치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 같은 형태로 진행되는 것은 바람직하지는 않다. 지난달 30일 유류 이송임무를 수행하던 UH-60 헬기에서 유류백이 경북 칠곡군 기산면 모 목공소 부근에 떨어졌다. 이 헬기는 사드가 배치된 성주골프장으로 가던 중이었다. 민간 피해는 없었지만 자칫 대형사고가 날 수도 있었다. 2002년 한·미 관계를 급속히 얼어붙게 했던 ‘효순이·미선이’ 사건과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장담하기 힘들다.

군은 이전에도 물자와 장비를 헬기로 이송했다. 성주골프장으로 들어가는 길을 막고 있는 주민들과 마찰을 피하기 위해서다. 주민들의 눈을 피해 군이 유류를 부식물로 위장해 들여가려다 발각되는 해프닝도 있었다. 정상적이지 않다. 주민들이 얼마나 군을 믿지 못하면 이렇게까지 하랴 싶지만 정상화될 필요가 있다.

정부가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기로 했고 이 과정에서 주민참여도 예정돼 있다. 현 상태에서 성주골프장 내 필요한 기본 물품의 반입은 허용돼야 한다. 의정부시가 일부의 반대로 지난달 개최했던 주한미군 2사단 창설 100주년 기념콘서트가 파행되고 천안시가 10월 개최 예정인 주한미군과 함께하는 ‘도깨비 축제’가 취소된 것도 아쉽다. 과도한 행사라는 지적도 있지만 굳이 반대할 것도 아니다. 잘못은 준엄히 꾸짖어도 공이 있다면 인정해줄 필요가 있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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