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호 칼럼] 감성 정치만으론 성공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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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호 칼럼] 감성 정치만으론 성공 못한다

입력 2017-07-11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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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이라는 단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굳이 좋다 싫다 두 개로만 물으면 후자 쪽이다. 요즘 대세에 역행하는 거지만 고칠 생각은 없다. 공감 능력이 약해서 그런 건 아니다. 힐링이라는 게 좀 감상적인 데다 상황을 더 그르칠 가능성이 높을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무조건 일반화하는 것은 아니다. 때와 상황에 따라 다르긴 하다. 그래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그 유명한 말도 49%만 신뢰한다. 취지는 이해하지만 근거가 희박한 낙관주의라고 생각한다.

우선 고래도 고래 나름이다. 고래에 따라 칭찬이 통할 수도 있고, 다른 방법이 더 나을 수도 있다. 대상을 너무 천편일률적으로 간주하거나 상황을 너무 낭만적 감성적으로 보는 건 아닌가. 물론 쾌적한 바닷물 속 고래는 그럴 수도 있겠다. 오염된 물이나 진흙탕 물에 있는 고래에게도 칭찬이 통할까. 칭찬이나 힐링보다는 좀 냉정하게 대하더라도 더러운 환경을 깨끗하게 바꿔주는 게 훨씬 의미와 가치가 있을 게다.

어느 때인가부터 힐링, 칭찬, 소통 같은 개념이 사람들의 머리에 깊이 각인됐다. 아마도 우리 사회의 경제적 어려움으로 상대적 빈곤이 심화됐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일부 가진 자뿐 아니라 없는 이들 사이에서조차 차하위자에 대한 갑질 문화가 확대된 결과일 것이다. 대세에 따른 마케팅 효과일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저기 상처받은 사람, 힐링이 필요한 사람, 위로받아야 하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그러니 감성과 위로가 이성과 합리성을 압도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지난 정권은 국민에게 분노라는 휘발성 강한 감성을 안겨줬다. 보수를 가장해 기득권을 빼앗기지 않으려 했던 데다 합리성마저 완벽하게 상실한 정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감성에 힘입어 탄생한 게 문재인정권이다. 그래서 그런가. 두 달여 비정상적이었던 몇 가지 대통령의 언행을 바꾸기만 했는데도 지지율 80%를 넘는다. ‘이게 나라냐’에서 ‘나라가 나라답게’로 옮겨가는 듯하다.

감성의 정치는 기분의 정치다. 냉철하게 보면 내용은 없다. 그런데 인기는 좋다. 그런 조짐이 보인다. 단칼에 이뤄진 성과연봉제나 비정규직 폐지, 원전 백지화 정책 같은 것들은 자못 낭만적이다. 옳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관련자들의 이해상충이나 과학과 기술, 미래 에너지 대책이 걸려 있는 영역을 명분과 정의로 치장된 감성이 주도하는 것은 아닌가. 냉혹한 현실은 애써 회피하는 것 같다.

미 해군 전폭기 조종사 제임스 스톡데일 대령은 1967년부터 8년 동안 베트남전 포로였다. 그중 4년 가까이를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을 정도의 작은 독방에 갇혔다. 참혹한 고문과 학대를 이기고 귀환한 전쟁 영웅에게 경영학자들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를 물었다. “근거 없이 집에 갈 수 있다는 낙관만 한 포로들은 상심을 거듭하다 결국 살아남지 못했다. 중요한 것은 (집에 갈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면서 아무리 가혹한 현실이라도 이를 부정하지 않고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다.” 학자들은 이를 ‘스톡데일 패러독스’라고 명명했다. ‘희망의 역설’로 번역할 수 있는데, 현실을 직시하지 않는 낙관적 희망은 오히려 실패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근거 없는 감성은 실패로 이어진다는 거다.

감성의 정치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여론은 곧 내용과 결과를 평가하려 들 것이다. 정치는 도덕이 아니고 결과이다. 낭만적 운동권의 정치가 현실에서 실패했다는 것은 모두가 안다. 방향성에 많은 동의가 있었고, 또 옳다고 믿는 사람도 적지 않았지만, 내용과 결과가 없었다. 이제 감성의 정치에 능력과 내용을 얹어야 할 게다. ‘사이다’ 발언이나 지시는 오래가지 못한다. 자칭 ‘폐족’이 다시 정권을 잡고, 뽑은 대통령을 다시 탄핵하는 게 여론이다. 그래서 지지율은 늘 허망하다. 감성의 정치보다는 ‘피 한 방울 흘리지 말고 살점 1파운드를 벨 수 있을 정도의’ 냉정한 능력의 정치를 보여줘야 하는 것 아닌가.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다.

김명호 수석논설위원 m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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