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노트] 더위와 짜증

국민일보

[감성노트] 더위와 짜증

입력 2017-07-14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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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오르게 그로스의 ‘메트로폴리스’
더위는 음식뿐 아니라 기분도 상하게 만든다. 그나마 짜증만 늘어난 거라면 다행이다. 열기는 공격성도 부추긴다. 우리나라 폭력 사건은 여름철(6∼8월)에 가장 빈번하다. 이건 다른 나라에서도 동일하게 관찰되는 현상이다. 2001년부터 2012년까지 미국 시카고의 일일 기온을 조사했더니 섭씨 32도까지는 날씨가 더워질수록 범죄율도 높아졌다. 공격성이 꺾이는 온도는 연구마다 다소 차이가 있지만, 이러한 패턴은 다른 연구들을 통해서도 확인됐다. 뉴질랜드에서 이뤄진 연구에 따르면 기온이 섭씨 1도 오를 때마다 폭행 사건의 수는 약 1.5%씩 증가한다. 똑같은 스트레스를 받아도 찜통더위에서는 ‘버럭’하고 폭발할 가능성이 부쩍 높아지는 것이다. 더울 때는 ‘조금만 더 참자’라고 마음을 다잡는 게 신상에 이롭다.

더위는 인간을 인색하게 만든다. 아이들을 돕는 비영리 단체를 위한 설문에 참여해 달라고 부탁했을 때 쾌적한 교실에 있던 학생들은 94%가 수락했지만 덥고 습한 교실에서는 64%만 조사에 응했다. 불쾌감이 느껴지는 더운 환경에서 일하는 직원은 자발적으로 고객에게 도움을 주고 의견을 제시하는 행동이 급격히 줄어든다. 요즘 들어 직원이 퉁퉁거리기만 하고 적극적으로 일하지 않는다면 면박부터 줄 게 아니라 일터의 온도부터 점검해봐야 한다.

그렇다고 날씨 탓만 해서는 안 된다. 더위에 대한 민감도는 사람마다 다르니 ‘혹시 내가 날카로워진 건 아닌가?’ 하고 수시로 자기 컨디션도 체크해야 한다. 평소보다 예민해졌다면 자극을 줄이고 쉬어야 한다. 덥다고 “짜증나, 짜증나”를 입에 달고 살면 더 예민해진다. 뇌는 언어적 현실과 실제를 제대로 구별하지 못한다. 입말로 “짜증”을 연발하면 그 소리를 들은 뇌가 “이 사람은 짜증이 났구나”라고 인식해서 스트레스 호르몬을 더 분출한다. 예민해지기 쉬운 날씨에 말투까지 고약해지면 뇌가 지각하는 불쾌지수는 더욱 높아진다.

습식 사우나 같은 날씨에는 짜증도 늘고 불친절해지기 십상이다. 사람이 나빠서 그런 게 아니다. 뜨거운 열기와 눅눅한 습기가 인간의 본성을 변질시킨 탓이 크다. 옆사람이 거슬리는 행동을 해도 날씨 탓이려니 하고 받아들이는 아량이 더 필요한 것이다.

김병수(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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