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영 칼럼] 최저임금은 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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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영 칼럼] 최저임금은 죄가 없다

입력 2017-07-18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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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결정된 내년도 최저임금이 몰매를 맞고 있다. 한꺼번에 너무 많이 올렸다는 것과 이에 따른 부작용을 세금으로 벌충하려는 것이 잘못됐다는 비판이 거세다. 둘 중에서도 세금, 즉 재정을 직접 투입하겠다는 정부 정책이 못마땅하다는 지적의 강도가 훨씬 세다. 최저임금심의위원회가 지난 15일 확정한 내년도 시간당 최저임금은 7530원, 올해보다 16.4% 급등한 금액이다. 예년 평균 상승률 7.4%의 배가 넘는다.

이 정도 상승 폭은 어느 정도 예견됐다. 지난 대선 때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유승민, 심상정 후보는 ‘2020년 최저임금 1만원’을 약속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매년 15% 이상 올려야 한다. 홍준표, 안철수 후보는 ‘임기 내 1만원’을 제시했다. 매년 10% 안팎의 인상률이어야 달성 가능하다. 누가 대통령이 됐더라도 공약을 즉각 수정하지 않는 한 임기 첫해인 올해는 상당히 올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앞으로 매년 이 수준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공약이라 하더라도 근로현장의 역풍이 예상을 뛰어넘으면 오름폭은 줄 수밖에 없다. 최저임금심의 과정에서 캐스팅보트를 쥔 심의위윈회 공익위원들은 허수아비가 아니다. 현재 9명의 공익위원 중 6명은 박근혜정부 때 위촉된 인사들이다. 이들이 새 정부 정책기조라고 해서 무조건 따를 리 없다.

최저임금은 양면성이 있다. 많이 올리면 좋은 쪽이 있고, 소상공인과 영세 자영업자, 중소기업인처럼 부담을 안는 측이 있다. 이들의 짐을 어떻게 나눠 지느냐가 최저임금 폭 결정의 관건이었다. 앙등을 경계하는 인사들은 늘 이 문제를 따졌다. ‘편의점 주인보다 차라리 알바를 하는 게 더 낫다’는 감정과잉의 논리가 대표적이다.

정부가 이번에 획기적인 방안을 마련했다. 대표적인 것이 정부의 직접 지원이다. 최저임금이 급격하게 오른 만큼 4조원 정도를 어려운 사업자들의 임금보전용으로 내놓기로 했다. 그러자 난리가 났다. 세금을 엉뚱한 데 쓴다는 격앙된 목소리가 확산됐다. 소득주도성장을 위해서는 최저임금의 가파른 인상이 불가피했고 이 과정에서 야기되는 피해 대책용으로 예산을 집행하겠다니 천만부당하단다.

세금은 어떤 곳에 써야 하나. 재정의 역할은 크게 세 가지다. 재정학 교과서는 자원의 효율적 배분, 소득의 재분배, 경제의 안정 성장이라고 가르친다. 이 셋을 이루기 위해 세금을 걷고 쓴다. 최저임금이 올라 내년부터 월평균 22만원쯤 더 받는 근로자는 최대 463만명이다. 가족을 감안하면 1000만명 정도의 삶이 지금보다 나아진다. 저소득층의 소비성향이 고소득층보다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유효수요를 촉진, 내수 진작에 일조할 것임은 자명하다. 국가 자원인 세금을 적절히 나눠 저소득층의 지갑을 두텁게 함으로써 경제성장에 득이 되는 최선의 사례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올 1분기까지 공적자금이란 이름으로 투입된 세금은 168조7000억원이었다. 회생할지, 쓰러질지 알 수 없는 은행과 보험·카드회사, 조선업체, 타이어회사 등에 들어갔다. 이 중 50조원 이상은 아직 못 거둬 사실상 날린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도대체 세금은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하나.

17년 만에 가장 많이 오른 최저임금 심의 결과에 따른 여진이 만만찮다. 그러나 버스는 정시에 떠났다. 지금 와서 세금논쟁 등으로 발을 굴러봐야 부질없다. 여야 대선 후보 모두 다짐한 공약의 발목을 잡는 야당은 추하다. 할일이 수두룩하다. 영세한 자영업자 지원책에 구멍은 없는지 살펴봐야 한다. 포화상태인 개인 서비스업자 구조조정을 위한 현실적 출구를 마련하는 일이 시급하다. 이번 기회에 산업구조 전반을 새로 구획하는 움직임도 구체화돼야 한다.

임금의 하한선을 일률적으로 정하는 것은 다소 거친 방식이고 때로 상처를 남긴다. 그렇다고 노동시장의 실패로 흔히 여겨지는 최저임금을 과감히 수술하지 않고 내버려둘 수는 없다.

정진영 논설위원 jy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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