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선교사들의 ‘장터 전도’를 아시나요

국민일보

초기 선교사들의 ‘장터 전도’를 아시나요

황미숙 박사, 130년 전 場市 선교 조명

입력 2017-07-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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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1년 사무엘 A 마펫 선교사가 평양의 한 장터에서 말씀을 전하며 전도하는 모습. 숭의마펫기념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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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여행에 나선 미국 감리교 스웨러(한국명 서원보·오른쪽) 선교사 일행의 모습. 자전거와 나귀를 끌고 동행하는 한국인들도 보인다.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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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북장로교 소속의 사무엘 A 마펫, 게일, 베어드 선교사 일행이 1891년 한반도 북부 지역으로 선교여행을 떠나는 장면.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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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날에 안악에 도착했습니다. 이곳 장터는 인근 고장에서 온 수천명의 사람들로 무척 붐볐습니다. 닷새마다 이런 장터가 서며, 이렇게 장이 서면 거리에서 전도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가 될 겁니다.”

사무엘 A 마펫(1864∼1939) 선교사가 미국 북장로교 선교본부의 엘린우드 박사에게 보낸 1890년 10월 20일자 선교편지 중 일부다. 당시 순회 전도를 다니던 마펫 선교사는 황해도 안악의 5일장을 방문한 경험을 전하면서 장터 전도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다.

황미숙 목원대 박사는 최근 ‘초기 선교사들의 전도 활동과 장시’를 주제로 한국교회사학회지에 발표한 논문에서 초창기 내한 선교사들의 장터 전도 활동을 집중 조명했다.

1808년 왕명에 의해 편찬된 만기요람 등에 따르면 19세기 전국의 장시(場市) 수는 대략 1000∼1200곳. 장시로 이어지는 보부상길, 이른바 ‘장시 루트(route)’는 초창기 선교사들이 지방순회 전도여행을 다니던 중요한 복음 루트였다.

장터에서의 전도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일단 파란 눈의 이방인이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선교사들은 한국인들이 노래에 관심이 많다는 걸 십분 활용했다. 이를테면 4∼5명의 선교사 일행이 장터 한쪽 모퉁이에 상자를 놓고 올라서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몰려들면 복음에 대해 소개한다. 이어 준비한 성경 구절을 읽은 뒤 전도지를 나눠주거나 ‘쪽복음서’(낱권 성경)를 판매한다.

전도가 매번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청중 가운데 “저놈 예수 믿는 놈이야”라고 누군가 소리치면 사람들이 흩어져버리곤 했다. 받아든 전도지를 찢어서 땅바닥에 버리는 이들도 있었다.

반면 장터에서 만난 이들 가운데 다음 주일에 교회로 찾아오는 이들도 있었다고 윌리엄 N 블레어 선교사가 자신의 책에서 밝히기도 했다. 그는 “장터는 사람들을 만나기 좋은 장소이며 복음을 전하기 안성맞춤인 곳”이라고 평가했다.

최초로 한국 땅을 밟은 아펜젤러 선교사도 본국 선교본부의 요청으로 1890년 6월쯤 한국의 13개도를 방문할 때 장시를 위주로 이동했다. 그는 장시를 돌면서 지방의 특색과 인심, 물산 등을 주의 깊게 살폈다.

초창기 순회 전도에 나선 선교사들의 이동 수단은 주로 도보나 조랑말이 끄는 마차, 가마였다. 1899년에야 자전거가 등장했다. 선교사들이 가장 많이 겪는 애로사항 가운데 하나는 숙박 문제였다. 주막에서 묵을 경우 겨울철 온돌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선교사들은 신선한 공기를 마시기 위해 문풍지를 뚫곤 했다. 이런 모습이 애처롭기까지 했다고 블레어 선교사는 기록했다.

황 박사는 “초창기 선교사들은 장터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일들을 목격하면서 한국을 배우고 이해하려 했다”면서 “한국문화를 이해하고 수용하기 위한 이 같은 노력이 없었다면 복음 전파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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