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예수-유원식] 일-신앙 균형 맞춘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국민일보

[나와 예수-유원식] 일-신앙 균형 맞춘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유명 IT기업 CEO에서 구호단체서 헌신하는 유원식 기아대책 회장

입력 2017-08-01 00:01
취재대행소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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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원식 기아대책 회장이 지난 28일 서울 강서구 기아대책 본부에서 포즈를 취했다. 유 회장은 기아대책의 사명은 “전 세계 아이들에게 떡과 복음을 통해 희망의 씨를 뿌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민석 선임기자
정보통신(IT)업계에서 전문경영인으로 승승장구하던 유원식(59) 한국오라클 사장은 2014년 8월 돌연 사표를 냈다. 회사에선 가는 곳마다 성과를 인정받고 교회에서 봉사도 열심히 했지만 왠지 모를 허전함이 있었다. 잠시 하프타임을 갖고 인생 후반전의 방향을 정하기로 마음먹었다. ‘하나님,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새벽기도하고 말씀 보며 고심하던 중 헤드헌터로부터 연락이 왔다. 국제구호단체 기아대책에서 회장을 공개채용한다는 것. 워낙 다른 종류의 일이라 가족들이 말렸지만 지원서를 냈다. 15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채용 통보를 받았다. 17년간 매일 아침 기사가 모는 차를 타고 서울 강남의 초고층타워로 출근하던 일상에도 마침표를 찍었다. 2015년 3월 2일 그는 직접 쏘나타를 몰고 서울 강서구 기아대책 본부로 출근했다.

잘 나가던 CEO에서 구호단체 사령관으로 변신한 그를 지난 28일 기아대책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경영노하우와 신앙을 토대로 ‘기아대책 2.0’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일터에서 하나님과의 동행을 꿈꾸고 실천하는 삶을 살기까지 그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어려서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미션스쿨인 영락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예수를 처음 접했다. 교회 주보를 가져가야 채플 출석을 인정해줬는데 한 번 다녀온 뒤로는 친구에게 주보를 두 장씩 가져오라고 시킬 정도로 교회에 쉽게 다가서지 못했다.

고교 3학년 때인 1976년 8월 강원도 원주 치악산 근처로 떠난 중고등부 수련회에서 사건이 일어났다. 친구들과 작은 교회 앞 개울가에 징검다리를 놔 주고 인근 마을을 다니며 ‘예수 믿으세요’하고 전도지를 나눠줬다. ‘이렇게 계속 살면 안 될 텐데’ 하는 마음에 그날 밤 ‘하나님 어떻게 사는 게 맞는지 답을 가르쳐 주세요’ 애원하며 기도하고 성경을 읽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3∼24)는 말씀이 마음에 확 들어왔다. 유 회장은 “그때 이분이 진리구나, 이분을 마음속에 모시고 살아야겠구나 결심했다”며 “작지만 저만의 회심 사건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날 새벽 비가 퍼붓는 바람에 산사태가 나서 도로가 끊겼다. 마을에서 원주시외버스터미널까지 걸어오는데 전날 전도하러 들렀던 마을 곳곳에 죽은 사람들이 가마니에 덮여있는 것이 보였다. 제대로 전도하지 못한 것이 후회됐다. 이 일이 두고두고 인생의 참의미를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신학도의 길을 고민했지만 ‘훌륭한 평신도로 살라’는 주변 권유에 따라 광운대에 진학했다. 대학생이 된 뒤 봉사활동도 열심히 하면서 1979년 한국밀알선교단 창립 당시 초대 멤버로 활동했다.

결혼해서 두 아들을 낳고 평범하지만 성공한 삶을 산다고 생각할 무렵 시련이 찾아왔다. 95년 큰 아들에게 뇌종양이 발병한 것. 2년 6개월간 투병하던 아들은 하나씩 하나씩 몸의 기능을 잃어가다 세상을 떠났다. 아이를 살리기 위해 기도원도 다니고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했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냐고 하나님께 원망도 많이 했다. 하지만 아이의 믿음이 부모를 붙잡아줬다.

“아이의 유품을 정리하러 초등학교에 갔더니 아이가 미술시간에 쓰던 스케치북을 내줬어요. 붓글씨로 가훈을 쓰라고 했는데 ‘항상 기뻐하라’는 가훈 대신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는 누가복음 23장 말씀을 힘겹게 적었더군요. 우리가 이 아이를 다시 만날 때까지 부끄러운 엄마 아빠가 되지 말자고 다짐하며 액자로 만들어 간직하고 있습니다.”

유 회장 부부는 작은 아들과, 큰 아들을 잃고 얻은 딸아이까지 네 가족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 살아가고 있다. 가정에서 고통의 시간을 살아내는 동안 아이러니하게도 일터에서는 계속 좋은 평가를 받았다. 삼성과 휴렛팩커드가 합작해 설립한 삼성HP로 옮겨 2002년까지 일했다. 2002년 한국썬마이크로시스템즈 사장으로 취임했고 2008년 한국오라클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유능한 CEO 생활을 마치고 기아대책으로 자리를 옮겼을 때 이곳 상황은 결코 좋지 않았다. 분란으로 조직은 침체돼 있었고 직원들의 자존감도 떨어져 있었다.

“활동가들이 자존감을 갖고 하나님 앞에서 소신껏 행복하게 일하도록 회복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올해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다시 거룩한 사명으로’라는 구호를 붙잡고 직원 영성 수련회를 진행했다.

직원들과 함께 조만간 기아대책 오케스트라도 결성키로 했다. 구호단체라고 ‘헌신페이’만 요구하기보다 사명을 불어넣고 행복하게 일하도록 돕고 싶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2020플랜’을 세우고 조직의 비전과 아이덴티티 점검에 주력했다. 유 회장은 “기아대책은 다른 구호 단체와 달리 드러내놓고 미션 사역을 하는 NGO라는 정체성이 분명하다”며 “전문성과 경험을 가진 우리가 한국교회의 선교 파트너가 되는 게 중요한 역할임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사업 효과 극대화를 모색하고 지속가능한 모금 체제를 갖추기 위한 전략도 세웠다. 지난해 후원국가 아이들을 초청해 한국에서 축구대회를 펼치며 꿈을 심어준 ‘희망월드컵’을 내년에도 개최키로 했다. 그는 평생 ‘원식’이라는 자신의 이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 “원하는 곳에 식사를 제공하라는, 기아대책의 사명이 담긴 이름 같다”는 후원이사의 말을 듣고 자긍심을 갖게 됐다.

“기아대책의 본질은 변하지 않지만 형식은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어요. 기아대책 2.0을 잘 만들어서 다음 주자에게 넘기는 게 제 사명인 것 같습니다.”

글=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 사진=강민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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