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칼럼] 북핵, 과대평가하자

국민일보

[김진홍 칼럼] 북핵, 과대평가하자

입력 2017-08-06 18:03
취재대행소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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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이슈가 국제사회를 어수선하게 만들 정도로 커진 데는 우리나라 역대 정권들이 북한 핵개발 능력이나 의지를 과소평가한 점도 큰 몫을 했다. ‘먹고살기도 벅찬 북한이 고도의 기술력을 요하는 핵폭탄을 만들 수 있겠어? 그리고 미국에 대항하기 위해 핵폭탄을 만든다는데 미국으로 핵폭탄을 보내려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개발해야 하고 핵폭탄도 소형화해야 하는데, 그게 가능하겠어?’라는 안이한 인식이 화를 부른 요인 중 하나라는 얘기다.

10년 전쯤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야금야금 기술을 축적해 온 북한이 마침내 2006년 10월 1차 핵실험을 단행했다. 국제사회는 경악했다. 정부는 유엔 차원의 대북 제재 결의에 적극 참여했다. 하지만 북한 핵 능력은 낮게 평가됐다. 진도(震度)를 고려할 때 폭발력이 0.8㏏으로 추정되며, 이는 북한이 중국에 사전 통보한 4㏏에 훨씬 못 미쳐 사실상 실패한 실험이라는 게 정부 설명이었다. 상상하기 힘든 일이 현실로 닥쳤는데, 핵실험이 실패했으니 안심해도 된다는 건지 헷갈린다. 2009년 5월 2차 핵실험 때는 3∼4㏏으로 추정됐다. 3년도 안 돼 1차 핵실험 때 중국에 통보한 만큼의 위력을 확보한 것이다. 2013년 2월 3차 핵실험은 플루토늄을 사용했던 1, 2차 때와 달리 고농축우라늄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정부는 “2차 핵실험 때보다 약간 발전됐으나 핵폭탄의 소형화와 경량화에는 이르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4차 핵실험(2016년 1월) 때 북한은 수소폭탄 실험이라면서 실험 성공으로 수소폭탄까지 보유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부는 이를 일축했다. 수소폭탄이라면 위력이 100㏏ 정도는 돼야 하나 6∼12㏏ 정도로 추정되며, 따라서 북한 주장이 거짓이거나 실패한 실험으로 보인다고 반박했다. 북한은 같은 해 9월 5차 핵실험을 실시한 뒤 “각종 핵탄두를 마음먹은 대로 필요한 만큼 생산할 수 있게 됐다”고 언급했다. 반면 정부 일각에서는 예전 실험 때보다 발전된 게 그다지 없다는 분석을 내놨다.

이렇듯 매 단계 정부는 북한의 핵 능력을 애써 낮게 봤다. 그리고 북핵 해결은 지지부진했다. 북한은 소형화된 핵폭탄 실전배치를 향해 한 발씩 나아가고 있는데, ‘실패한 실험’이라는 등 한가한 평가만 내놓고 있으니 핵 야욕을 꺾을 근본적인 대책이 나올 수 있겠는가.

최근에도 유사한 사례가 있었다. 북한이 지난달 4일 ICBM급 미사일을 시험발사한 직후 정부 내에서는 “북한이 ICBM 능력을 갖췄다는 미국 정부의 평가는 과장된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북한의 ICBM이 대기권 재진입 때 마찰열을 견딜 수 있는지, 실제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는지가 모호하다는 얘기도 했다.

미국의 랜드연구소는 10㏏급 핵폭탄이 서울에 떨어질 경우 12만5000∼20만명이 숨지는 등 29만∼40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한다는 시뮬레이션 결과를 내놓은 적이 있다. 미국의 천연자원보호협회는 15㏏ 핵폭탄을 서울 용산구 상공에서 투하할 경우 62만명이 사망할 것이라고 추산했고, 미 국방부 국방위협감소국은 20㏏급 핵폭탄이 서울에서 터지면 112만명 이상이 숨질 것으로 분석했다. 경제적으로도 심대한 손실이 우려되는 건 물론이다.

북한이 1차 핵실험을 한 지도 벌써 10년이 넘었다. ICBM급 미사일도 두 차례 쏘았다.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 확보는 시간문제라고 할 수 있다. ICBM뿐 아니라 사거리 800㎞인 스커드 미사일에도 1t짜리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다. 우리나라 전체가 핵 공격 사정권 안에 있는 셈이다.

여러 시뮬레이션 결과에서 보듯 핵무기로 인한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방심은 금물이다. 이제부터라도 ‘북한이 설마 우리나라를 핵으로 공격하겠어?’라는 순진한 생각은 버려야 한다. 그리고 최악의 시나리오에 만반의 대비태세를 갖추는 데 진력해야 할 것이다.

북한의 핵 공격 가능성을 억제하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많다. 우선 정부는 독자적인 미사일 방어망 개발에 박차를 가해야 하고, 한반도에 전술핵을 재배치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할 때가 됐다. 그리고 핵 공격 시 시민들이 피할 수 있는 방공호 구축과 시민들을 상대로 한 대피훈련 실시도 추진해야 한다. 미국에서는 최근 핵무기가 폭발할 경우 대피요령을 포함한 대응 매뉴얼이 발표되고, 정기적인 대피훈련 계획까지 공개됐다. 이에 반해 우리는 너무 안이하다. 제대로 된 방비책이 마련되려면 북핵을 과소평가하지 말고 과대평가하는 일이 우선돼야 할 것이다. 폭염이 한창인 요즘, 예전과는 차원이 다른 핵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

김진홍 논설실장 j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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