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라 모토유키 목사 “일본 총리가 한국에 와 사과하고 머리 숙여야”

국민일보

노무라 모토유키 목사 “일본 총리가 한국에 와 사과하고 머리 숙여야”

한국 방문한 ‘청계천 성자’ 노무라 모토유키 목사

입력 2017-08-09 00:00
취재대행소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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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라 모토유키 목사가 8일 서울 종로구 율곡로 여전도회관 8층 회의실에서 1970년대 청계천을 회상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제 인생과 청계천은 하나죠. 떼려야 뗄 수 없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소박한 삶 속에서 함께 눈물 흘리시는 주님을 보았죠.”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율곡로 여전도회관에서 만난 노무라 모토유키(86·野村基之) 목사는 1968년 청계천을 처음 방문했던 소감을 묻는 질문에 이같이 답하며 눈을 감았다. 잠시 후 노무라 목사는 당시 자신이 찍은 사진을 한 장씩 넘기며 추억을 꺼내기 시작했다.

“이 아이 이마에 큰 사마귀가 있었지. 엄마가 얼마나 안타까워했는지 몰라요. 나도 형편이 어려웠지만 10만엔을 수술비로 전달했습니다. 이 아이가 자라서 택시 운전사가 되었다는데, 한번 만나보고 싶네요.”

노무라 목사의 눈빛은 어느새 판잣집이 가득했던 그 시절 청계천을 바라보는 듯했다. 곧 아흔이 되는 노(老)목사가 일생 동안 집중했던 주제는 청계천과 한·일 관계의 회복이었다. 청계천으로 대변되던 가난의 문제는 한국의 경제가 성장하면서 상당 부분 해소됐다. 물론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있지만 노무라 목사가 구호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일본 도쿄와 서울,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오가던 때와는 비교할 수 없다. 노무라 목사는 독일의 구호단체인 KNH(Kindernothilfe)로부터 프로그램 기금을 받아 한국에 수차례 전달했었다.

여전히 남아있는 문제는 갈수록 꼬여가는 한·일 관계다. 복잡한 한·일 관계를 풀기 위해 양국이 해야 할 일이 뭔지 묻자 “일본은 딴소리 말고 사과만 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청계천의 성자로 살면서도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일제 강점기, 일제의 만행에 대해 한국인들에게 사과해 왔다. 2012년 2월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평화비에 헌화하고 기도한 것 때문에 일본에서 고초를 겪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일본이 사과해야 한다는 원칙을 굽히지 않았다. 노무라 목사는 “아베 신조 총리가 일본 국민을 대표해 한국에 와 일제의 만행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고 머리를 숙여야 한다”면서 “서독의 빌리 브란트 총리는 바르샤바에서 무릎을 꿇고 진심을 보였는데 일본 정부는 70년이 지나도록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원래 가해자가 기억을 빨리 잊는 법”이라면서 “지도자의 미온적인 태도가 일본 국민들이 사과할 수 있는 기회마저도 빼앗고 있다”며 일본 지도자들의 무책임함을 꼬집었다.

그는 한국인들의 노력도 필요하다고 했다. “힘든 일이겠지만 더 이상 미움만 기억하지 마세요. 대화하고 소통해야 합니다. 대화를 통해 과거 일본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상기시켜야 하고 한국인들의 마음속 깊이 남아 있는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일본이 사과하는 만큼 관계를 진전하자는 ‘조건부 소통’은 한계가 분명합니다.”

그가 60차례 넘도록 한국을 방문하며 물심양면의 사랑을 전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그는 “아버지가 남긴 유산 때문”이라고 말했다. 부친 노무라 지이치(野村治一) 교토 도시샤대 교수는 일본 군국주의와 국가권력을 비판했던 ‘요주의 인물’이었다.

노무라 목사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가정형편이 어려워져 빈민촌으로 이사했는데 그곳에서 차별받는 조선인 친구들을 만났다”면서 “인간이 인간을 경멸하고 무시하는 것에 강하게 반발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했다. 노무라 목사와 한국의 관계가 시작된 것은 결국 어린 시절의 경험이 강하게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기독교인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예수님은 일생 로마나 유대, 그 어떤 세상 권력과 타협하지 않았던 아나키스트였다”면서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런 예수님의 삶을 기억하면서 소외되고 눈물 흘리는 이웃과 함께해야 한다”고 밝혔다. 노무라 목사는 인터뷰를 끝내며 “기독교인은 언제나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고민해야 한다”면서 “제가 이번 방한이 마지막이 아니길 기도해 달라”며 환하게 웃었다.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사진=강민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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