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덕환] 살충제 계란 파동의 교훈

국민일보

[기고-이덕환] 살충제 계란 파동의 교훈

입력 2017-08-21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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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안전을 최우선으로 챙기겠다는 정부의 극약처방으로 시작된 살충제 계란 파동의 후폭풍이 거세다. 계란의 95.7%는 멀쩡했고, 실제 오염도도 부작용을 걱정할 수준이 아니라는 조사 결과는 무의미해져 버렸다. 검사에 필요한 시약조차 제대로 확보하지 않고 무작정 밀어붙였던 전수조사도 부실했고, 대부분의 오염이 친환경과 동물복지 계란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국민들의 불안은 오히려 증폭됐다. 결국 계란 소비는 반토막 났고, 제빵업계의 매출도 크게 줄었다.

살충제 계란은 폭염으로 기승을 부린 진드기와 이 때문에 닭장에 뿌렸던 살충제가 사료나 깃털에 묻었다가 몸속으로 흡수돼 생산된 것이다. 만약 계란에 남아 있는 살충제가 소비자에게 유해한 수준이라면 그런 계란을 낳은 닭도 온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살충제는 사람이나 해충뿐만 아니라 닭에게도 치명적인 유해 성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 잔류허용 기준의 60배가 넘을 정도로 심하게 오염된 계란이 확인된 유럽에서도 피해 사례는 알려지지 않았다. 전수조사에서 확인된 오염 수준이라면 유아의 경우에도 하루 2개 정도는 섭취해도 괜찮다는 의사협회의 공식 발표도 있었다. 사실 일부 전문가들이 강조하는 간, 신장, 갑상샘의 문제나 메스꺼움, 구토, 어지럼증 같은 증상은 실수로 살충제를 직접 섭취·흡입하거나 장기간 지속적으로 섭취할 경우에나 걱정할 일반적인 부작용이다. 살충제의 발암성을 걱정할 이유도 없다.

살충제로 오염된 계란이 생산·유통돼도 괜찮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사용이 허가된 살충제의 종류와 잔류허용 기준을 엄격히 정해놓은 법과 제도가 지켜지지 않은 것은 심각한 사회문제이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와 민간이 운영하는 다양한 인증제도가 파행 운영된다는 사실은 그냥 넘길 수 없다. 법과 제도의 문제와 실제 위해성은 전혀 다른 차원의 사안이다.

농식품부가 살충제 관리를 방치했다는 사실은 가장 충격적이다. 농민들이 농약 성분을 일일이 확인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농약상에서 농약이나 동물 약품을 임의로 조제·배합해 판매하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모든 살충제에는 용도와 사용 방법을 농민이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분명하게 표시해야만 한다. 사용이 허용된 작물이나 가축의 범위는 물론 사용 방법을 정확하게 알려주지 않은 농약상에게 무거운 책임을 묻는 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 1973년에 사용이 금지된 DDT가 검출된 것도 경악할 일이다.

친환경 인증을 받은 양계장의 닭장에는 어떠한 유기합성 살충제도 살포할 수 없다. 단순한 약속이 아니라 법으로 정해져 반드시 지켜야 하는 엄격한 규정이다. 그런 규정을 의도적으로 지키지 않았으면서도 친환경 인증을 빌미로 40%나 비싸게 계란을 판매한 농민들에게는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 배 이상 비싼 값을 받는 동물복지 농장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살충제 관리와 친환경 인증 제도를 엉망으로 운영한 농식품부와 잔류허용 기준 관리, 식품안전관리인증제도(HACCP)를 부실하게 운영한 식약처에도 무거운 책임이 불가피하다. ‘농피아’의 놀이터로 변해 버린 민간 인증기관은 확실하게 정리해야 한다. 친환경 인증제도 개선돼야 한다. 사용을 허용하는 ‘친환경 살충제’를 훨씬 더 명확하게 규정해야 한다. 천연 재료를 숙성·발효시켰다는 이유만으로 정체를 알 수 없는 천연 농약 사용을 무분별하게 허용하는 것은 과학적으로 용납할 수 없다.

밀집사육이 조류인플루엔자(AI) 같은 질병에 취약하고, 윤리적으로도 용납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밀집사육을 금지하면 서민들에게 최고의 단백질 공급원인 계란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올라갈 것이다. 식탁 안전은 화려한 구호나 일방적인 정책 의지만으로 지켜지는 것이 아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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