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호 칼럼] 청와대의 집단사고를 우려한다

국민일보

[김명호 칼럼] 청와대의 집단사고를 우려한다

입력 2017-08-29 18:15
취재대행소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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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29일 새벽에 중거리탄도미사일(IRBM)로 추정되는 미사일을 북태평양으로 발사했다. 비행거리는 2700여㎞였고, 특히 일본 상공을 지나게 해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차원의 대형 도발을 감행했다. 대화 재개 신호를 계속 보내고 있는 우리 정부는 또다시 머쓱해졌다. 미사일을 발사하자 미국과 일본 정상은 전화 통화를 가졌다. 한·미의 외교장관이나 합참의장 간, 청와대와 백악관의 안보 책임자 간 통화와는 격이 다르다. 북한 도발이 있을 때마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개최, 강력 대응 천명, 규탄 성명, 제한적 무력 응징 시위, 안보리 회부 등 규격화된 일상적 대응 매뉴얼만 작동된다. 그러고는 다시 대화를 원하는 신호가 나간다. 합리적 전략·전술인가? 아닌 것 같다. 성과는 있었나? 없었다. 청와대 내에는 북한 문제에 관한 한 집단사고가 있는 건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마저 든다.

불과 사흘 전에는 미군이 탄도미사일로 잠정 분석한 북한의 도발을 청와대는 애써 개량된 방사포라고 추정했다. 그리고 저강도 도발로 규정했다. 청와대 관계자가 “이 정도 도발이면 을지훈련 뒤에 대화 국면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큰 신호”라는 분석까지 내놓았다. 군이 아니라 먼저 청와대가 발사체를 분석해 발표한 것도 좀 이례적이었다. 그러나 군은 이틀 후 탄도미사일로 수정했다. 탄도미사일이면 유엔 제재 대상이나 방사포면 그렇지 않다. 도발을 가급적 낮은 단계로 축소하려는 의도가 개입된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기-승-전-대화’로 이어지는 집단사고가 청와대 안에 퍼져 있는 건 아닌가.

사드 배치도 그렇다. 다음 달 초 잔여 발사대 배치를 끝낼 모양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방부의 사드 관련 보고 누락을 지렛대 삼아 환경평가 등 절차적 정당성 확보를 지시했다. 하지만 돌고 돌아 결국 박근혜정권의 스케줄대로 사드 배치가 이뤄지게 됐다. 잃은 것은 한·미 간 신뢰요, 얻은 것은 내부 갈등이다. 명분만 찾다 쓸데없이 갈등만 키워 이것저것 손해만 봤다. 정책 결정과 갈등 관리의 대표적 실패다. 이것 또한 청와대가 집단사고의 오류에 빠진 결과 아닌가.

진보건 보수건 전쟁을 원하는 이는 없다. 전쟁을 막기 위해, 동북아 평화와 안정을 위해, 궁극적으로 통일을 위해 쓸 수 있는 중장기적 전략과 단기적 전술은 다양하다. 이 정권이 대북 대화를 기조로 잡았다 하더라도 청와대 어느 한구석에서는 대화론을 제외한 다른 방안들을 현실적으로 검토하는 게 당연하다. 그래야 대화를 추진할 수단이 많아진다. 전쟁조차도 외교의 한 수단으로 삼는 현실이다. 하물며 막무가내식 도발을 해대는 북한을 상대하는데 오직 ‘기-승-전-대화’ 전략은 정말 딱해 보인다.

청와대에는 북한 문제에 관한 한 당연히 갖고 있어야 할 플랜 B, C가 없어 보인다. 청와대는 정권 초기 인선 실패가 잇따르자 의사결정 과정에서 레드팀(우리 편의 약점을 드러내고 보완하기 위해 운영하는 가상 적군 역할)을 운영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북한 문제 대응에 그 기능이 작동했다는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물론 다른 결정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 없었거나, 외부로부터의 그런 보고나 시각을 아예 차단해버린 것은 아닌가. 집단사고의 처참한 결과는 미국 케네디 행정부와 군의 피그만 침공 결정 사례에서 충분히 연구됐다.

“선한 정책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막스 베버, 소명으로서의 정치) 정치지도자나 집권세력이 새겨야 할 경구다. 정치가에겐 신념윤리와 책임윤리 둘 다 중요한 덕목이나 신념윤리의 원칙에만 따르다 보면 실현 가능성 관점에서 전적으로 비합리적 행동이 나타날 수 있다고 했다. 정치는 결과로 책임지는 행위다. 그는 이런 주장도 했다. “윤리적으로 선한 목적을 갖는다고 그것이 부정적 결과를 어느 정도 정당화해줄 수 있는지를 지시할 수 있는 그 어떤 윤리도 세상에는 없다.” 무서운 지적이다.

김명호 수석논설위원mhkim@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