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종식] 탐정 업무범위 규정은 후진적

국민일보

[기고-김종식] 탐정 업무범위 규정은 후진적

입력 2017-09-01 19:04

기사사진

탐정업의 기능 상 그들이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잘 알 수 없다. 그래서 탐정의 업무 대상이나 범위를 법률로 ‘이것만 하라’는 식으로 획정하는 포지티브형(열거주의) 입법은 그 자체가 ‘법률을 휴지로 만드는 난센스’라는 것이 탐정제를 안착시킨 선진국들의 일반적 경험론이다. 즉 탐정의 업무를 미리 열거해두지 않으면 통제불능 상황이 될 것이라고 보는 발상은 교통사고가 걱정돼 자동차를 운동장에서만 몰게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래서 탐정을 포지티브형 법제로 관리하는 나라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나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은 하나같이 업무의 범위를 아예 정하지 않는 대신 ‘최소한 해서는 안 될 일(절대적 금지)’만을 제시하는 네거티브형(개괄주의) 입법으로 탐정업을 관리하고 있다. 게다가 개인정보보호법 등 여러 개별법이 탐정의 활동을 제어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일본의 경우 2006년 ‘탐정업 업무의 적정화에 관한 법률’ 제정 이래 줄곧 탐정의 업무 범위를 정하지 않고 ‘탐정의 불법행위를 금지한다’는 대원칙만 제시하고 있다. 6만명의 민간 조사원이 신고만으로 탐정 활동을 펼치고 있으나 탐정의 탈법으로 사생활이 불안하다는 지적은 거의 없다. 그래서 일본은 자타가 공인하는 탐정제도 모범 국가다.

우리나라에서는 탐정업 법제화가 논의되기 시작한 17대 국회부터 지금까지 11건의 탐정법안이 발의됐다. 그중 10건이 세계적 입법 추세와는 거꾸로 업무의 범위 제한, 즉 포지티브형 입법의 형태다. 현재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계류 중인 2건 가운데 하나인 공인탐정법안도 그런 유형이다. 탐정업을 반대해온 대한변호사협회나 탐정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경찰청은 법안 내용에 이 같은 문제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반응이 없다. 물론 탐정이 업무 범위를 제한받지 않으면 자신들의 직역이 침해받거나 직업 능력이 탐정으로부터 도전받게 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일 수도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지난 7월 국회 미래일자리특별위원회가 제출한 공인탐정 및 공인탐정업에 관한 법률안이 탐정의 업무 범위를 두지 않는 네거티브형(개괄주의)이라는 점이다. 업무의 범위 대신 ‘공인탐정의 업무는 다른 사람의 권익을 침해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야 한다’는 업무의 기본 원칙만 제시한 것이다. 이에 따라 탐정법안이 국회에 처음 발의된 2005년 이래 12년 만에 포지티브형과 네거티브형 두 가지 형태를 놓고 신중한 선택을 해야 하는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탐정제를 성공적으로 완성시킨 선진국들은 탐정업의 건전성을 담보하기 위해 업무 범위 제한보다 탐정의 자질에 방점을 두고 있다. 공인탐정의 일탈 방지책으로 업무 범위 설정 같은 행정편의주의가 아니라 ‘엄격한 선발 기준과 과단성 있는 퇴출’이라는 적격성 검증을 중요시하는 것이다. 따라서 탐정에게 업무 범위를 제시하는 것은 ‘법 따로 현장 따로’의 혼란을 조장하는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또 있으나마나한 형식적인 법문에 묶여 ‘광범한 편의 수단으로서의 자료수집 전문가’와는 거리가 먼 ‘무늬만 탐정’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김종식 한국범죄정보학회 부회장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