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칼럼] “남조선 것들 모조리 쓸어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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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홍 칼럼] “남조선 것들 모조리 쓸어버리자”

입력 2017-09-03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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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김정은이 6차 핵실험 버튼을 눌렀다. 제재 강도를 높여가는 국제사회를 향해 ‘해볼 테면 해봐라’며 조롱하는 듯한 모양새다. 이번 실험으로 북한은 핵무기를 거의 완성했다고 볼 수 있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은 물론 우리나라와 일본을 타격할 수 있는 각종 미사일에 소형화된 핵탄두를 장착한 핵무기의 실전배치는 이제 시간문제다. 동북아 안보 환경을 근본적으로 뒤흔들 ‘게임 체인저’가 현실로 바짝 다가온 셈이다. 우리는 머지않아 북핵을 이고 살아야 하는 불안한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참으로 엄중한 국면이다.

김정은의 멈출 줄 모르는 핵 야욕이 실제 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아직까지는 적어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의 ‘전쟁 절대 불가’ 의지 탓도 있지만, 김정은 스스로 전쟁이 벌어질 경우 자신이 지불해야 할 대가가 훨씬 크다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김정은은 핵보유국 지위를 공식적으로 얻을 때까지 앞으로도 미국을 흔들어댈 것이다. 미국 내 여론 분열이 일차 노림수로 보인다. 괌은 물론 하와이, 로스앤젤레스, 뉴욕, 워싱턴 등 미국 모든 도시들을 핵무기로 날려버릴 수 있다고 계속 겁을 줘 미국인들 사이에서 ‘왜 우리가 희생하면서까지 한반도를 지켜야 하느냐’는 여론이 확산되기를 바라고 있을 거란 얘기다. 나아가 그런 여론이 주한미군 철수로 이어지기를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그 조짐은 이미 가시화되고 있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 먼저 운을 뗐다. 그는 최근 북한 정권 붕괴 이후의 중국 우려를 덜기 위해 주한미군 철수를 중국과 사전에 합의할 수 있고, 그러면 북핵 문제 해결에 더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 바통을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가 이어받았다. 그는 중국이 북한의 핵 개발을 동결시키고 미국은 한반도에서 병력을 철수하는 협상을 고려할 수 있다고 했다. 키신저는 김정은 정권 교체를 통한 북핵 폐기를 위해, 배넌은 북핵 동결을 위해 주한미군 철수를 언급했으나 거듭된 대미 겁박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상상하기조차 싫은 끔찍한 일이지만 미 정부가 제2의 애치슨 라인을 설정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가끔 연상되는 요즘이다.

주한미군 철수는 김정은의 지상과제가 아니다. 남한 궤멸, 즉 한반도 적화통일이 그의 최종 목표다. 그는 북한 최고 권력자가 된 직후부터 최근까지 남한을 불바다로 만들어야 한다거나 짓뭉개야 한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의 지난 1일 보도에 따르면 그는 “첫 타격에 남조선 것들의 대응 의지를 완전히 꺾어놓고 그래도 단말마적으로 발악하는 놈들이 있다면 아우성칠 놈, 비명 지를 놈도 없이 모조리 쓸어버려야 한다”고 했다. 남한 서북도서사령부를 겨냥하고 있는 북한군 포병부대의 사격훈련을 참관한 뒤 한 말이다. 지난 1월에는 “남조선 괴뢰들을 불이 번쩍 나게 와닥닥 쓸어버리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남한 내 급진 좌파들이 폭동을 일으키면 북한이 남침해 적화통일하는 방법을 염두에 뒀으나 김정은은 남한을 아예 없애겠다는 쪽으로 바꾼 것이다. 그래야 장기집권의 길을 활짝 열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핵무기를 손에 쥐고 우리나라를 을러대는 강도는 점점 세질 것이다.

김정은의 속내를 장황하게 들춰낸 이유는 문재인정부 외교안보팀의 안보관·대북관이 나이브한 게 아닌가 하는 걱정 때문이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시행 중인 와중에 개성공단 재가동을 언급하질 않나, 한·미 연합훈련 규모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질 않나, 북한이 주한미군 기지를 타격할 수 있는 미사일을 쐈는데 방사포라고 축소 발표하질 않나, 미덥지 못한 행태들이 반복되고 있다. 게다가 우왕좌왕하다가 겨우 ‘임시배치’로 가닥을 잡은 사드 문제도 여전히 매듭을 짓지 못하고 있다. 정상회담, 군사회담, 적십자회담 등 현 정부가 출범 이후 줄기차게 요구해온 온갖 대북 대화들은 퇴짜를 맞았다. “남조선 당국은 저들에게 대화를 거론할 아무러한 명분도, 초보적인 자격도 없다는 것도 모르고 주제넘게 핵 문제를 내들고 대화의 조건이니 뭐니 하며 푼수 없이 놀아대고 있다.” 북한 노동신문에 최근 실린 논평의 일부분이다.

북핵은 현실이다. 가상의 위협이 아니다. 그러나 외교안보팀이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하고 있는 건지 다소 의문이다. 김정은이 대화에 응해주기만을 학수고대하며 “만나 달라”는 사인을 보내는 건 지금까지로 족하다. 진보정권이 들어섰다고 적화통일을 포기할 김정은이 아니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전략을 짜야 한다. 한데, 대화론자 일색인 외교안보팀이 그 일을 해낼 수 있을까.

김진홍 논설실장 j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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