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빠진 축구공·맨발로 이룬 첫 승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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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빠진 축구공·맨발로 이룬 첫 승 기적

입력 2017-09-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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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수단 유소년 축구 국가대표팀이 3일 서울 노원구 월계로 장석교회 주일 예배에 참석해 남수단 부족어인 딩카어로 특송을 부르며 율동을 하고 있다. 신현가 인턴기자
“꼬예쑤 아뤼 아나붓 렐레무토 티레냐(예수님이 명령하면 누구도 거절할 수 없어요).”

3일 오후 아프리카 남수단 부족어인 딩카어 찬송이 서울 노원구 월계로 장석교회(함택 목사) 예배당에 울려 퍼졌다. 현란한 조명도 반주도 없었지만 아프리카 특유의 리듬감을 온몸으로 발산하는 소년 16명의 찬양에 성도들은 뜨거운 박수로 화답했다. 특송 무대에 선 주인공들은 경북 영덕에서 열린 제12회 한국 중등(U-15) 국제축구대회 참가를 위해 지난달 26일 방한한 남수단공화국 유소년 축구대표 선수들이다(국민일보 8월 24일자 27면 보도).

어린 선수들이 이날 주일예배에 참석한 것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훈련해 왔던 대표팀을 후원하고 기도해 준 교회와 성도들에게 감사를 전하기 위해서다. 윤진혁 최진웅 안수집사가 공동이사장을 맡고 있는 스켈리도스포츠블루재단은 2014년 대표팀 창단 이래 유니폼과 축구화를 지원해 왔다. 성도들은 내전의 아픔을 딛고 축구로 희망을 써 내려가는 선수들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기도로 힘을 보탰다.

예배 후 만난 사무엘 사반 말리스 고돈(15) 선수는 “아버지는 내전 중 돌아가셨고 친구들은 소년병으로 끌려가 전쟁터에서 총구를 겨누고 있다”며 “암흑 같은 삶에 유일한 희망이 돼준 게 축구”라고 고백했다.

팀 주장인 사이먼 피티아 저스틴 알베르토(15) 선수는 “아버지 같은 임흥세 선교사님 덕분에 태어나 처음으로 국제대회에 출전하는 기적을 맛봤다”고 했다. 그는 “선교사님이 항상 ‘하나님께선 우리에게 약속하신 걸 잊지 않으신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이번 대회에서 그 약속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체험했다”며 감격해 했다.

선수단은 남수단 주바공항을 떠나 꼬박 36시간의 여정 끝에 영덕에 도착했다. 시차 적응할 겨를도 없이 경기를 치러야 했다. 태국 유소년대표팀과 붙어 0대 4 패, FC서울유소년축구단에 0대 7 패, FC신갈·용인유소년축구단에 0대 2 패. 내리 3패를 당하며 주눅이 들 법도 했지만 신앙으로 무장한 선수들은 달랐다. 알베르토 선수는 “실망감이 없진 않았지만 ‘질 때도 있고 이길 때도 있다’고 선수들을 격려하며 하나님께 더욱 의지하자고 함께 기도했다”고 회상했다.

기도의 힘이었을까. 남수단 대표팀은 FC상하이유소년팀과 가진 4번째 경기에서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첫 승을 기록했다. 대표팀으로 발을 맞춘 지 2개월여 만이다.

팀 감독인 임 선교사는 “우리 선수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내전으로 고통받고 있는 남수단 국민들에게 값을 매길 수 없는 선물을 선사한 것”이라며 “바람 빠진 축구공과 맨발로 이뤄낸 기적이 더 큰 복음의 열매를 맺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사진=신현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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