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 투석하고 여행하고… 만성신부전 환자 성지”

국민일보

“혈액 투석하고 여행하고… 만성신부전 환자 성지”

만성신부전증 치료·휴양시설 ‘제주 라파의 집’

입력 2017-09-13 00:00
  • 국민일보 카카오플러스 친구등록하기

기사사진

만성신부전증 환자를 위한 혈액투석 치료 및 휴양시설 ‘제주 라파의 집’ 전경. 이 시설은 올해로 개관 10주년을 맞았다.

기사사진

박진탁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이사장(왼쪽)이 제주 라파의 집 상담실에서 의료진과 함께 환자와 상담하고 있다.

기사사진

만성신부전증을 앓는 이기봉씨가 제주의 한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자동차에 기름을 넣는 모습.
이전사진 다음사진
1 2 3
만성신부전증을 앓는 이기봉(가명·35)씨의 청춘은 고달프다. 초등학교 3학년 이후 줄곧 환자로 살았다. 그때부터 콩팥 기능 저하로 소변보는 것조차 힘들어지면서 인생은 송두리째 흔들렸다.

이씨는 일주일에 3회 혈액투석 치료를 받아야 살아갈 수 있다. 신장과 췌장을 이식 받는 게 답이지만 그런 ‘축복’이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안다. 그래도 그는 제주의 한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멀리서 보면 피부가 햇볕에 건강하게 그을린 청년 같지만, 실제론 투석 환자에게 나타나는 증상일 뿐이다. 주삿바늘이 들어가는 팔목은 피부가 경화돼 혹처럼 부풀어 올라 있다.

“장애인고용센터에 가서 일을 찾았지만 쉽지 않았어요. 일주일에 3일은 쉬어야 하는 투석 환자를 누가 고용하겠어요. 주유소 아르바이트도 감사하죠. 요즘 주유소에서 숙식을 합니다. 기증자요? 제게 그런 행운이 있을까요.”

이씨의 어머니와 형제들도 비슷한 질환에 시달리고 있다. 집안 형편은 나빠졌다. 성년이 된 그는 집을 나와 편의점 아르바이트 등을 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2007년 꿈의 집을 알게 됐다. 어느 날 혈액투석 환우를 위한 ‘제주 라파의 집’이 설립된 것을 알게 됐고 이곳에 정착하게 된 것이다. 지상 3층, 지하 1층 연건평 2314㎡ 규모. 의사와 간호사가 상주하고 투석기 20대가 운용된다. 환자를 위한 숙소는 1인실 28개, 2인실 20개, 4인실 3개를 갖추고 있다. 이 시설은 주 3회 투석해야 하는 환자들의 삶의 질을 높이려는 목적으로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이사장 박진탁 목사)가 한국교회와 후원자들의 지원을 받아 설립했다. 혈액투석 환자는 2015년 기준 6만7000명에 달한다.

박진탁 목사는 “장기기증운동을 벌이면서 투병하는 환자와 가족들이 짧은 기간이라도 모든 고민을 덜어놓고 평안을 찾는 방법이 없을까 생각했다”면서 “히브리어로 ‘여호와 라파’는 치료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인데, 라파의 집에 머물면서 하루는 투석 받고, 또 하루는 직원 안내로 제주도 여행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곳 환자들에게는 숙식이 무료로 제공된다. 보호자 왕복 항공권은 50% 할인받을 수 있다. 그야말로 혈액투석이 반드시 필요한 환자에겐 성지(聖地)인 셈이다. 관광과 숙식은 1∼4주까지만 허용된다. 한화생명 등이 후원하는 ‘우리가족 힐링캠프’도 수시로 진행된다. 한화생명은 신장 기증인, 뇌사 장기 기증인 유가족, 장기 이식인 등에게 후원과 함께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2007년 이후 이씨에게 라파의 집은 마음의 집이 됐다. 박 목사와 의사·간호사 등은 그에게 부모 형제 같은 존재다. 예배실에서 이씨와 환자 몇몇이 함께하는 묵상 모임이 진행됐다. 간호사 마광숙(서귀포중앙교회) 집사가 이씨를 챙겼다. 초신자나 다름없는 그는 지난주일 예배를 빼먹어 쑥스러운 표정이었다.

이씨의 표정은 늘 밝다. 직원들은 그를 위해 기도했다. “신앙 안에서 형제가 돼 구원을 알게 하시고, 신장 기증을 받아 완치되게 해 주시고, 좋은 자매 만나 가정을 이루게 하소서.”

제주=글·사진 전정희 선임기자 jhjeon@kmib.co.kr

많이 본 기사

반려인 연구소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