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정승훈] 너의 목소리가 들려

국민일보

[데스크시각-정승훈] 너의 목소리가 들려

입력 2017-09-13 17:30
취재대행소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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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봄으로 기억한다. 날씨 좋은 주말 오후, 서점의 신간 코너에서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을 별생각 없이 들었다가 큰 충격을 받았다. 소설 속 아이들의 모습은 상상 이상이었다. 평소에도 ‘현실은 영화나 소설 속보다 훨씬 더 참혹한 법’이라고 생각했지만 작가 김영하의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좀 달랐다. 작가의 상상력이 현실보다 더 자극적인 상황을 만들어냈을 것이라고, 그때는 생각했다. 소설을 읽은 지 1년여 후 소설 속 아이들을 현실에서 만나게 됐다. ‘착한 사회를 위하여-학교 떠난 아이들을 품자’란 기획을 준비하는 특별취재팀의 일원으로 학교 밖 아이들 여럿을 만나 인터뷰했다. 소설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었다. ‘현실은 영화나 소설 속보다 훨씬 더 참혹한 법’이라는 생각은 더 굳어졌다.

특별취재팀이 인터뷰한 아이 중 A(당시 18세)는 중학생 때부터 사소한 일에 쉽게 흥분해 폭력을 휘둘렀다. 타인의 고통에는 무감각했다. A는 “심심하면 때렸다. 짜증나는 애 있으면 뒷산에 묶어놓고 후련해질 때까지 두들겨 팼다”고 했다. 조직적으로 피해자 입단속을 해서 A의 폭행은 드러나지 않았다. A는 결국 학교에서 쫓겨났다. 고교 1학년 때 옆 반 아이의 얼굴을 교실 창문에 찧어 피투성이로 만들었다. 오토바이에 동승했던 친구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 후 자신을 ‘살인자’라고 했다는 이유였다. 퇴학당한 건 당연한 결말이었다.

하지만 40여명의 인터뷰 대상자 대다수는 A와 달리 그저 학교를 가지 않는, 평범한 아이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주목받지 못했다. 학생도, 직장인도, 어린이도 아닌 아이들은 무기력하고 희망 없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사회가 버린 불량품처럼 거리를 뒹굴며 스스로를 망가뜨리고 있었다. 또래들 간의 다툼이 발생하면 어느 날은 집단따돌림 가해자가 됐다가, 어느 날은 폭행의 피해자가 됐다.

아이들을 인터뷰하면서, 대안을 고민하면서 느꼈던 것은 교문 안과 밖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라는 점이다. 학교를 떠난 아이들도 그 사실을 절감하고 있었다. 아이들 상당수는 ‘자퇴’라는 얘기를 꺼냈을 때 부모나 교사가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았다며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되돌릴 수 없었다. 그들이 학교를 떠난 그 순간부터 사회는 학생이 아닌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고 무관심했다. 그저 색안경 낀 시선으로 혀를 차며 바라볼 뿐이었다.

최근 잇따라 보도된 집단폭행 사건에 학교를 떠난 아이들이 연루된 사실이 밝혀지면서 학교 밖 청소년의 폭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소년법을 개정 혹은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지난 11일엔 부산의 14세 가해자 1명에게, 12일엔 강릉의 17세 가해자 2명에게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가혹한 범죄를 저지른 이들에게 응분의 처벌을 내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제2, 제3의 사건을 막기 위한 노력이다.

매년 5만명 정도의 청소년이 학교를 떠난다. 가정의 돌봄 속에 학교 외의 대안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아이들은 부모와 학교의 외면 혹은 방치 속에 학교 밖으로 나선다. 하지만 이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지내는지 실태를 파악하고 있는 단체는 없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가장 큰 문제는 여기에 있고, 해결책 찾기도 여기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학교 밖 아이들을 만날 때 왜 학교를 그만뒀는지, 그 과정에서 가정·학교·사회는 어떤 역할을 했는지 물었다. 그들의 눈에 비친 학교에 대해서도 들었다. 많은 질문과 답변이 오갔지만 아둔해서인지 결론을 내리지는 못했다. 다만 아이들에게 더 물어봐야 한다는 생각만은 또렷하게 남았다. “그러게 왜 학교를 떠났느냐”고 힐난하기에 앞서 학교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지내는지 찬찬히 듣는 게 먼저 할 일인 듯싶다. 사회가, 정부가 아이들에게 뭘 어떻게 해줘야 할지를 고민하는 건 그 다음이다.

정승훈 사회2부장 shjung@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