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 개혁] 사법부는 독립했지만 법관은 독립하지 못했다

국민일보

[사법부 개혁] 사법부는 독립했지만 법관은 독립하지 못했다

김명수 인사청문회 계기로 본 사법부의 현주소

입력 2017-09-14 05:02
취재대행소왱

기사사진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가 1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야당 의원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김 후보자 청문회 이틀째인 이날도 야당 의원들은 김 후보자의 이념 성향 등을 집중 공격했다. 최종학 선임기자

기사사진

이전사진 다음사진
1 2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는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국회에 제출한 서면답변서에서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이 ‘절망의 재판소’라고 밝혔다. 이 책은 일본 최고재판소 사무총국 등에서 33년간 판사로 일한 세기 히로시 메이지대 교수가 일본 사법부의 관료주의적 폐단을 낱낱이 폭로한 내용이다. 법조계에서는 일본 사무총국을 우리나라 법원행정처로 바꿔 넣어도 대부분 들어맞는 내용이라는 평이 컸다.

김 후보자는 13일 국회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사법 관료화 방지를 위해 고등법원과 지방법원으로 법관 인사를 이원화하는 제도를 반드시 실현하겠다”고 말했다. 지방법원 배석판사부터 대법관에 이르기까지 계층적 피라미드 구조를 이루는 법관 인사제도의 곳곳을 손보는 것이 사법개혁의 첫걸음임을 선언한 셈이다. 12년 전 유지담 전 대법관이 퇴임하며 “인사 때마다 일희일비(一喜一悲)하고 때로는 소신도 감춰가며 요령껏 법관 생활을 했다”고 밝힐 정도로 오랜 시간 판사들은 줄 세우기에 시달렸고, 인사 평가에 예민했다.

판사들은 현재도 매년 법원장의 근무평정에 따라 A, B, C등급으로 분류되고 있다. 매년 하나씩 쌓이는 등급은 곧 판사의 성적이 되고 이 가운데 ‘엘리트’ 법관이 탄생한다. 날 선 인물평까지 동반한 개개의 근무평정은 법관생활 중에는 공개되지 않는다. 판사직을 그만둔 이후에야 요청을 거쳐 자신의 재직 중 성적표를 확인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직업인 만큼 엄격한 평가가 필요한 측면도 있지만 사실상 윗선의 눈치를 보게 만든다는 비판도 컸다.

2000년대 초반까지는 법관들의 서열명부도 존재했다. 사법시험과 사법연수원 성적을 적용해 기수별 1등부터 꼴찌까지의 명단을 적은 명부는 대법원 내에 보관됐고, 고법 부장판사 임명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당시에는 “판사는 등산을 해도 서열 순으로 오른다”는 농담으로만 치부하기 힘든 이야기들이 나돌았다. 판사들도 서열을 감지하고 있었기에 인사 때마다 각자의 희망 근무지와 비교해 “인사가 잘못됐다”는 식의 불평도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판사들은 각자 근무지에서의 평정 외에도 법원행정처 근무 경력이라는 평판 경쟁에도 처해 있다. 법원행정처는 해외 제도의 변천과 사법부 안팎 현안 연구 등 재판 지원을 위해 각종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는데, 행정처 심의관 외에도 일선 법원 판사가 포함되곤 한다. 공개적으로 모집할 때도 있지만 행정처 심의관이 천거해 TF에 합류하는 경우도 있다. 시간을 쪼개 ‘인턴 심의관’으로서 업무능력을 높이 평가받은 이들은 행정처에 실제 근무하게 되기도 한다.

사법 관료화에서 순기능을 찾는 목소리도 있다. 업무능력과 사명감이 남다른 판사들을 계속해서 혹독한 평가와 경쟁으로 내몰았기에 우리 사법부의 기능이 그나마 유지돼 왔다는 것이다. 유럽 등 해외 각국에 비해 처리 사건이 월등히 많고 미제사건은 적다는 점에서 신속한 재판이 이뤄져 왔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법학계도 법원행정처가 소수 인력으로 효율적 행정을 담당했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사법 관료화는 “사법부는 독립했지만 법관은 독립했지 못했다”는 비판으로 이어졌다. 올해 들어서는 ‘국제인권법연구회 사태’를 계기로 사법행정권 남용이 사실로 확인되자 사법부 안팎의 개혁 요구가 거세졌다.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최근 법관 승진의 하이라이트였던 고법 부장판사 보임제도 폐지를 의결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맥락에서 김 후보자는 “사법행정에 관한 의사결정과 집행 과정에서 수평적·합리적 의사소통이 이뤄져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글=이경원 양민철 기자 neosarim@kmib.co.kr, 사진=최종학 선임기자, 그래픽=안지나 기자

많이 본 기사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