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칼럼] 대북전략 지지층에 휘둘려선 안 돼

국민일보

[김진홍 칼럼] 대북전략 지지층에 휘둘려선 안 돼

입력 2017-09-17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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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차원이 전혀 다른 전대미문(前代未聞)의 북핵 위기가 코앞에 다가왔다. 국가의 존망을 좌우할지도 모를 중대 고비를 넘기려면 창의적인 발상이 절실하다는 건 두말할 나위 없다. 김정은의 폭주가 국제사회와의 일전을 불사한 듯 거침이 없는 데다 우리나라의 대북 레버리지가 마땅하지 않은 상태이지만 그동안 금기시됐던 것을 모두 꺼내놓고 검토할 때다. 우여곡절 끝에 사드 임시 배치가 이뤄졌지만 귀순한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공사 말마따나 ‘사드 할아버지’라도 들여와야 할 시점인 것이다. 청와대 국가안보실을 비롯한 외교안보팀에 주어진 막중한 책무다. 한데 여전히 유화책으로 김정은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희망적 사고’에 빠져 있는 듯해 걱정스럽다.

전술핵의 한반도 재배치 문제만 해도 그렇다. 북핵 공포감이 확산되면서 다수의 국민이 찬성 의견을 내놓고 있다. 핵에는 핵으로 맞설 수밖에 없다는 게 많은 군사전문가의 이야기다. 그러나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는 “전술핵을 다시 들여와도 북한의 행동에 하등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청와대 관계자들도 이구동성으로 전술핵 반입에 부정적이다. 그래서인지 문재인 대통령마저 전술핵 재배치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최근 공개적으로 밝혔다. 대한민국 최고 지도자로서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절대 안 되며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지가 담겨 있지만, 가공할 위력의 북핵에 맞서 국가와 국민 안전을 담보할 실행계획은 보이지 않아 불안하다. 전술핵 재배치를 대북 카드로 활용할 여지를 남겨뒀어야 했다. 이를 위해 ‘핵무기 위치는 중요하지 않다’는 트럼프 미국 행정부와 긴밀히 협의하고 설득하는 모습을 보여줬어야 했다. 가뜩이나 손에 쥐고 있는 카드가 별로 없는 마당에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카드를 우리 스스로 버린 셈 아닌가.

송영무 국방장관 경우는 민망한 케이스다. 그는 이달 초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북핵에 대비해) 미국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5개 회원국에 전술핵을 배치한 대책을 검토할 용의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검토할 용의가 있다”고 답했다. 또 전술핵을 배치하면 중국으로 하여금 보다 적극적으로 대북 제재에 나서도록 유도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언급해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일주일 뒤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전술핵 재배치를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말을 바꿨다. 야당의 전술핵 반입 주장에 대해선 “단견”이라고 일축했다. 청와대 경고를 받고 소신을 바꾼 것인지, 말실수를 한 것인지 도통 헷갈린다. 그는 “핵잠수함의 경우 검토할 준비는 돼 있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는 유효한지 의문이다.

통일부는 부처의 존재감을 애써 부각시키려는 듯 시도 때도 없이 남북대화 타령이다. 문 대통령이 제안한 남북 군사당국회담, 남북 적십자회담을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이산가족 상봉 등을 추진하겠다는 뜻은 가상하나 때가 있는 법이다. 남북대화는 잠시 잊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이 엄중한 시기에, 그것도 북한의 중거리급탄도미사일(IRBM) 발사 징후를 포착하고도, 유엔 국제기구를 통해 북한의 모자보건사업에 800만 달러를 지원하겠다고 덜컥 발표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청와대와의 협의 아래 결정됐겠지만 대통령과 코드 맞추느라 열심인 통일부가 지금은 대북 인도적 지원을 실시할 적기(適期)가 아니라는 의견을 낼 생각이나 했을까 싶다. 야당이 일제히 지원계획 철회를 요구하고, 미국과 일본에서 비판 목소리가 나오리라는 걸 예상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밀어붙인 결과는 무엇인가. 대통령에게 괜한 부담만 안겼다.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건 지지층을 의식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노무현정부 때 통일부 장관을 지내고 지난 대선 때 문 대통령 자문그룹 ‘10년의 힘 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정세현씨의 비판은 매섭다. “촛불로 문 대통령을 뽑았다. 그런데 동명동모(同名同貌·이름과 용모는 같다)지만 다른 사람이 대통령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문 대통령이 아베(일본 총리)처럼 돼가고 있다. 일본도 아닌 우리가 유엔 대북제재를 선도하고 나서면 어떻게 하느냐. 우리는 중간만 따라가면 된다.” 정씨를 포함해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들 중에는 한·미 훈련 규모를 축소하자고 주장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거나 남남갈등을 불러올 의견들에 대통령이 휘둘리지 않도록 외교안보팀이 중심을 잡고 보좌해야 한다. 그래야만 온탕과 냉탕을 자주 오가 조마조마하다는 여론이 줄어들 것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김정은 사전에 핵 포기란 없다고 봐야 한다. 한반도 비핵화는 거의 물 건너갔다.

김진홍 논설실장 j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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