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칼럼] 前前 정권과 싸울 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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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홍 칼럼] 前前 정권과 싸울 때인가

입력 2017-10-01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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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7일 청와대에서 열린 여야 4당 대표와의 회동에서 이같이 말했다. “앞 정부를 기획 사정해서는 안 된다. 정치보복을 경험해봐서도 그렇고, 체질적으로도 정치보복에 반대한다. 적폐청산 (과정에서) 혹시라도 정치보복 우려에 대해 귀 기울이겠다. 그런데 개별 비리가 불거져 나오는데 수사를 막을 수 없다.” 그 이틀 전에는 수석비서관·보좌관 회의에서 여야 대표와의 회동 추진과 관련해 이렇게 말했다. “추석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국민들께 국가적 문제에 대한 초당적 협력이라는 추석 선물을 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추석 연휴다. 일반 국민들 추석 상차림에 주 메뉴로 올라온 건 초당적 협력이라는 희망일까, 정치보복 논란 또는 과거사 전쟁이라는 절망일까. 후자 아닐까 싶다. 황금연휴를 목전에 두고 현 정권과 이명박(MB) 정권의 대치가 첨예화된 탓이다. 현 정권은 “MB 정권은 사찰 공화국이요, 공작 공화국”이라며 MB 처벌까지 언급하고 나선 반면 MB 측은 “적폐청산을 빌미로 한 MB 수사 움직임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한풀이용 정치보복이자 보수를 궤멸시키려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에다 자유한국당은 “노 전 대통령 가족을 (박연차 게이트의) 뇌물수수 공범으로 고발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 가세했다. 문재인정권과 전전(前前) 정권(MB) 싸움에 전전전(前前前) 정권(노무현)까지 함께 나뒹구는 말 그대로 이전투구로 번질 가능성이 농후한 상황이다.

자기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는 양측 싸움이 앞으로도 수개월 이어질 경우,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 보나마나 현 정권이 이길 것이다. 이미 드러난 여권의 의중대로 MB는 검찰 포토라인에 서게 될 공산이 크다. 청와대와 국가정보원, 검찰, 국세청, 여당 등 살아 있는 권력이 총동원된 상태인데 죽은 권력인 MB 정권이 대적할 수 있겠는가. 여론도 현 정권에 그다지 나쁘지 않다. 나아가 MB가 검찰에 출두하게 되면 집권세력은 한목소리로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며 은근히 인신 구속을 강요할 소지가 다분하다. MB 정권이 노 전 대통령을 옥죄던 때와 데자뷔다.

이렇게 사태가 일단락되면 여권은 자축 분위기일지 모르겠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MB까지 수감됐으니 이제 진보만의 세상이 됐다고 환호를 지르는 이도 있을 것이다. 청와대는 가장 큰 적폐를 도려냈으니 이제 나라다운 나라 건설에 온 국민이 매진하자고 호소하는 모습을 보일 듯하다.

하지만 집권세력이 감수해야 할 후폭풍은 상당할 것이다. 곳곳에서 진영논리와 이념 대결이 판을 칠 조짐이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다. 그러니 원만한 국정 운영을 위한 국민 대통합과 국회에서의 협치는 거의 포기해야 할 것 같다. 정치보복의 악순환을 끊는 새 시대의 맏형을 기대했는데, 정치보복의 전철을 밟는 구시대의 막내였다는 비난도 쏟아질 것이다. 또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우리나라를 한 단계 발전시킬 미래 전략을 짜기보다 MB를 손보는 일에 몰두하고 있으니 이러다 후진국으로 내려앉는 거 아니냐는 불안과 불만이 커질 소지가 다분하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멀쩡한 이가 없는 국가적 불명예는 언제쯤 해소될까, 문 전 대통령 역시 불행한 대통령으로 기록되지 않을까라는 등 착잡한 심경을 토로하는 이들도 늘어날 것이다. 전전 정권과의 싸움은 패자뿐인 싸움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여권은 이쯤에서 멈출 기세가 아니다. 지금까지 MB 정권을 겨냥해 일사불란하게 내놓은 자료들이 너무 많다. 국가정보원 정치개입,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이버사령부 댓글 파문, 태광실업 세무조사 재조사 등등. 또 MB 정권의 4대강 사업과 자원외교, 방산비리에 대한 수사마저 예고한 상태다. 조만간 MB의 거액 비자금 문제가 터질 거라는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문 대통령 의지가 강한 듯하다. “개별 비리가 불거져 나오는데 수사를 막을 수 없다”는 발언은 이를 시사한다. MB 정권의 고약한 죄질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데 없던 일로 넘길 수 없지 않느냐는 여권 인사들의 논리와 일치한다. ‘MB에 대한 구원(舊怨)이 정말 깊구나’라는 걸 새삼 확인하게 된다.

문 대통령은 올 추석 선물로 전국 5도의 곡물을 한데 담아 보냈다. 통합을 기원하는 뜻이 담겨 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진정으로 통합을 바란다면 심중(心中)의 분노부터 거둬내길 바란다. 더욱이 나라 안팎 사정이 위중하다. 우리끼리 적폐니, 신(新)적폐니 하며 싸움질할 때가 아니다. 한가위 연휴 둘째 날인 1일, 하늘이 잔뜩 찌푸렸다.

김진홍 논설실장 j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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