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손수호] ‘문화비축기지’가 불편한 까닭

국민일보

[청사초롱-손수호] ‘문화비축기지’가 불편한 까닭

입력 2017-10-10 17:37 수정 2017-10-11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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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 매봉산 자락에 ‘문화비축기지’가 들어섰다. 이곳의 이력이 각별하다. 1973년 중동전쟁으로 1차 석유파동을 겪자 서울시가 높이 15m짜리 유류탱크 5개를 만들었다. 휘발유 1개, 경유와 등유 각 2개에 6907만ℓ의 기름을 저장했다. 서울시민이 한 달 버틸 수 있는 양이었다. 보안시설로 관리하다보니 시민들의 눈에 잘 띄지 않았다. 그러다가 바로 길 앞에 월드컵경기장이 들어서면서 위험시설로 분류돼 2000년 말에 폐쇄됐다가 지난 9월 1일 마침내 문화공간으로 새로운 모습을 드러냈다.

2013년에 아이디어 공모전을 열고 2015년 첫 삽을 떴으니 4년의 준비기간을 가졌고,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40년 만의 변신이다. 추석 연휴에 찾아가 보니 산과 언덕, 마당이 연결된 특유의 입지가 눈길을 끌었다. 얼룩무늬 군복 모습의 큰 건물이 전면에 배치돼 있었고 나머지는 깎아지른 절벽 아래 띄엄띄엄 부챗살 모양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석유에서 문화로’ ‘함께 채워가는 문화탱크’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동선을 잡으니 T5에서 T1로 이어진 탱크의 행렬을 만날 수 있었다. T5는 탱크와 옹벽 사이에 둥근 띠를 만들어 기지의 역사를 보여주는 이야기관으로 만들었다. T4는 내부를 살려 복합문화공간으로 꾸몄고, T3은 탱크의 원형을 손대지 않고 온전하게 보존했다. T2는 실내외를 모두 공연장으로 꾸몄고, T1은 탱크를 해체한 뒤 유리로 벽체와 지붕을 새로 만들어 파빌리온으로 명명했다. 자욱한 세월이 더께를 느낄 수 있는 현장이었다.

남은 것은 커뮤니티센터라고 불리는 T6이다. 입구에서 봤던 그 큰 건물이다. 석유탱크는 5개인데 T시리즈는 6까지 이어져서 웬일인가 물어보니 1, 2번 탱크에서 걷어낸 철판으로 조립한 건물이라고 했다. 알록달록한 모습은 그래서 생겨났다. 상층부는 행정실과 세미나 혹은 회의실, 하층부는 카페로 쓰고 있었다. 말하자면 겉모습만 탱크일 뿐 새로 지은 건물이다. 공식 블로그에도 이 건물이 메인 이미지로 등장한다. 나의 불편함은 여기서 비롯된다.

무릇 신축은 재생의 철학과 충돌한다. 장소의 역사성을 존중하고 거기서 신생의 씨앗을 찾아내는 것이 재생의 지향점이다. 비슷한 사례로 자주 인용되는 오스트리아 빈의 가소메터(Gasometer) 시티도 가스저장고 4개를 젊은이들을 위한 공동주택으로 다시 만드는 과정에서 산업시설의 옛 모습을 유지하는 데 공을 들였다. 3개의 건물이 그렇게 재탄생했고, 하나의 저장고에 새 건물을 덧붙인 것은 공간의 역동성을 위한 묘안이다. 엉뚱한 곳에 새 건물을 짓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T6은 위치와 크기도 적절치 않다. 기존 탱크의 입지와 흐름을 무시하고 중앙에 우뚝 세웠다. 그러다 보니 길을 지나가거나 가까운 하늘공원에서 바라보면 T6을 옛 석유탱크의 하나로 오인한다. 규모는 기존 시설을 초라하게 만들 정도로 압도적이다. 재생 공간에 새 건물을 중심에 두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이런 악수가 생태친화적 공간으로 꾸미려는 기존의 노력까지 까먹게 만든다.

사무실이나 휴게공간이 필요하다면 다른 곳에 겸손하게 지어야 한다. 세종문화회관이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예술의전당 등 현대건축에서 보듯 전시장이나 공연장과 같은 문화공간이 앞서고 나머지는 그 뒤를 조용히 따른다. 미륵사를 복원하면서 일대 폐사지의 기와를 모아 미륵사 모양의 사무공간을 커다랗게 지을 수 없는 노릇이다.

산업시설을 문화공간으로 전환하는 작업이 쉬운 일이 아니다. 가소메터처럼 건축미가 뛰어난 건물이 아니기에 토목적으로, 미학적으로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주객이 바뀌는 선택은 삼갈 일이다. ‘서울로7017’처럼 이해 충돌이 없었다는 장소의 성격을 감안하면 오히려 쉬운 대상일 수도 있었다. 문화비축기지라는 새로운 공간의 탄생을 축하하되 재생의 모델로 삼아서는 안 될 것 같다.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