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동 칼럼] ‘늙은 청년들’을 어찌 하오리까

국민일보

[박현동 칼럼] ‘늙은 청년들’을 어찌 하오리까

입력 2017-10-10 18:22 수정 2017-10-10 21:37
  • 국민일보 카카오플러스 친구등록하기

기사사진

긴 추석 연휴의 뒤끝이 찜찜하다. 오랜만에 만난 친지들은 반가웠지만 ‘늙은 조카’들을 보자니 안쓰럽다. 마흔이 다되도록 시집, 장가가지 못한 그들로선 일가친척들의 시선이 여간 부담스럽지 않다. 좋은 짝 데려오라는 말도 꺼내지 못했다. 덕담마저 그들에겐 악담이다. 삼포, 오포에 이어 희망과 인간관계까지 포기한 칠포세대도 적지 않다고 한다. 번듯한 대학 졸업하고 사지육신마저 멀쩡한데….

새 정부는 ‘일자리정부’라고 자칭한다. 대통령 직속으로 일자리위원회를 두고 대통령이 직접 위원장을 맡을 정도로 일자리 창출에 모든 걸 걸었다. 출범하자마자 11조원 규모의 추경예산까지 편성했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 조직과 돈 모두를 투자한 것이다. 청와대에 일자리 상황판까지 만들었으니 그 절박감과 진정성은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그러나 성적표는 초라하다. 고용시장은 악화일로다. 청년실업률은 9%를 훌쩍 넘어 18년 만에 가장 높다. 청년체감실업률은 20%를 웃돈다. 정부가 공무원을 더 뽑는다고 하니 너 나 할 것 없이 노량진 공시촌에 모인다. 웃픈(우습고도 슬픈) 현실이다.

친구 아들 K도 그중 한 명이다. 지방 법대를 졸업하고 스물여섯에 노량진에 발을 들여놓았다. 벌써 5년이 지났으니 서른하나다. 생물학적으로 힘이 넘치고, 인생에서도 가장 중요한 20대 중후반을 고스란히 바쳤다. 연애는 언감생심 꿈도 못 꾼다. 공자는 서른이면 뜻을 세운다(三十而立)고 했건만 제 앞가림도 못한다. 여전히 부모 등골 파먹는 처지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명절이면 고향을 찾았다. 이젠 그마저도 끊었다. “K판사, 공부 잘되나”라는 집안 어른들의 말씀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란다. 걱정 반 격려 반 농이지만 폐부를 찌른다. 추석 연휴 말미에 서울에 온 친구는 아들에게 방한복을 사주고 내려갔다. 어깨가 축 처진 서른 넘은 아들을 보니 아무 말도 나오지 않더란다.

새 정부의 성장엔진 축은 ‘소득’이었다. 소득이 늘어야 소비가 진작되고 이것이 다시 생산으로 이어져 성장을 견인하는 소득주도성장론을 내세웠다. 일자리도 늘어날 것이라고 봤다. 최저임금을 크게 올린 것도 여기에 근거한다. 결과는 정부 생각과 달랐다. 소득은커녕 일자리도 늘어나지 않았다. 구직급여 규모는 사상 최대를 기록했고, 제조업 가동률은 떨어지는 추세다. 6개월 이상 실직 상태로 지낸 ‘장기 백수’는 18만명을 웃돈다. 실업자 5명 중 한 명꼴이다. 경제상황이 좋아지지 않는데 일자리가 늘어날 리 없다. 추석 연휴 임시공휴일까지 지정하며 성장을 유도했지만 정작 돈은 해외에서 썼다. 정부 의도대로 소비는 이뤘지만 성장을 이끌어 내긴 어려워 보인다.

이뿐 아니다. 물가상승률에 실업률을 더한 경제고통지수는 6년 만에 가장 높다. 그나마 수출이 지탱하고 있으나 아슬아슬하다. 만일 반도체 경기가 나빠지면 우리 경제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경제정책의 효과는 단시일 내에 잘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뭔가 잘못됐다. 다행인 것은 정부가 소득주도성장의 한계를 인식하고 혁신성장 카드를 꺼냈다는 점이다. 한쪽 날개로 날 수 있는 건 없다. 왼쪽 날개가 있어야 오른쪽 날개가 제구실을 하고, 반대로 오른쪽 날개가 있어야 왼쪽 날개도 역할을 한다. 경제도 다르지 않다. 수요만으로 성장을 이끌 수 없듯이 공급만으로도 성장을 견인할 수 없다. 혁신성장과 소득주도성장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한데 정치권은 딴 나라에 사는 것 같다. 10년 위기설이 도질 정도로 경제는 비틀거리고, 늙은 청년들은 골방에서 미래를 찾는 상황에서도 정치권은 네 탓 싸움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 그것도 현재나 미래가 아닌 과거 문제를 놓고. 영화 남한산성은 ‘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정부와 정치권은 이 질문에 답할 의무가 있다. 청년들이 더 이상 골방에서 미래를 찾는 걸 원치 않는다면….

논설위원 겸 국민CTS 대표 hdpark@kmib.co.kr

반려인 연구소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