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명희] 재조산하

국민일보

[한마당-이명희] 재조산하

입력 2017-10-10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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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황제 신종은 선조가 무능하다고 보고 임금을 바꾸거나 세자와 나라를 나누어 다스리는 분할역치 명을 내리며 사헌이라는 인물을 사신으로 보냈다. 선조는 사헌의 압박에 광해군에게 임금 자리를 물려줄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영의정인 서애 류성룡은 반대했다. 사헌은 7일간 조선에 머물면서 누란의 위기에 나라를 건져낸 류성룡의 활약과 우국충정에 감복해 양위(讓位) 계획은 없던 일로 하고 돌아갔다. 사헌은 이후 선조에게 외교문서를 보내 “그에게 국정을 맡기면 사직을 안정시키고 산하(山河)를 중흥(再造)시킬 것”이라고 류성룡을 극찬했다. 여기서 유래된 말이 재조산하(再造山河)다. ‘나라를 다시 만든다’는 뜻이다. 실의에 빠진 류성룡에게 이순신 장군이 적어줬다는 말로 알려졌지만 사실이 아니다.

선조는 임진왜란 직후 명나라에 대해 ‘재조의 은혜(再造之恩)’라는 표현을 썼다. 명나라 군사를 파견해 망할 뻔한 조선을 재건해준 은혜라는 뜻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일 경북 안동 하회마을을 찾아 류성룡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영모각과 종택인 충효당을 관람했다. 문 대통령은 풍산 류씨 종손 등과 오찬을 함께한 뒤 방명록에 ‘재조산하와 징비(懲毖)의 정신을 되새깁니다’라고 적었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인 올해 신년 메시지에서, 또 지난 2월 이순신 장군이 지휘본부로 사용했던 여수 진남관을 방문했을 때도 이 단어를 언급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임기 내내 ‘비정상의 정상화’를 외쳤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이후에는 적폐청산과 국가 대개조를 내걸었다. 짧은 한국사를 돌아보면 통치자들은 5년마다 ‘개혁’ ‘적폐청산’ ‘역사 바로 세우기’란 명분으로 전 정권에 대한 정치보복과 정책 뒤집기를 되풀이했다. 그러면서 역사는 제자리걸음을 했다. 미래보다 자꾸만 과거를 얘기하는 대통령 모습을 보면서 노파심이 드는 이유다.

글=이명희 논설위원, 삽화=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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