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양각색 신을 섬겼던 로마, 기독인은 어떻게 극복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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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양각색 신을 섬겼던 로마, 기독인은 어떻게 극복했나

처음으로 기독교인이라 불렸던 사람들/래리 허타도 지음/이주만 옮김/이와우

입력 2017-10-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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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대한민국에서 기독교인으로 사는 건 어렵지 않다. 동네마다 교회가 있고, 클릭 몇 번이면 인터넷 설교를 골라 들을 수 있다. 기독교를 향한 비난 여론이 늘었어도 물리적 조건만 놓고 볼 때 기독교인 되는 게 힘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예수 사후 로마 제국에서 시작된 기독교는, 그렇게 쉽게 택할 수 있는 종교가 아니었다. 유대인은 물론 이교도로부터 지탄받았고, 일상에서 불편함을 감수하며 따라야 할 규범이 적잖았다. 때론 순교를 각오할 용기도 필요했다. 그럼에도 40년경 1000명에 불과하던 기독교인은 1세기 7000∼1만명, 2세기 20만명, 3세기 500만∼600만명으로 늘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저자 래리 허타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대 신학 명예교수가 질문의 답을 찾아 나선다. 초기 기독교를 집중 탐구해온 권위자인 그는 1∼3세기를 ‘기독교 역사를 통틀어 가장 흥미로운 시기’로 규정한다. 당시 로마는 각양각색의 신을 섬겼다. 집이나 신전 등 곳곳에서 자기가 믿는 신뿐 아니라 남이 믿는 신에 대해서도 예의를 갖춰 숭배하는 종교적 행위가 일상화된 사회였다.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과 예수만 섬긴다며 다른 신은 죄다 우상 취급하고 배척하는 기독인은 한마디로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사도 바울이 바울서신에서 우상 숭배를 피하라고 누누이 강조한 이유엔 이런 사회적 배경이 있었다. 그래서 여타 종교와 달리 기독교인에게 걸맞은 올바른 행동과 윤리적 가치가 요구됐다.

저자는 또 당시 이들이 ‘체질적으로 텍스트를 중시하는’ 공동체였음에 주목한다. 그들은 모였을 때나 혼자 있을 때나 성경 봉독을 중시했고, 이를 위해 수천 자에 달하는 성경 사본을 필사하고 배포하는 일에 힘을 아끼지 않았다.

책은 초기 기독교 공동체를 문화 역사적 맥락에서 조명하는 최근 흐름의 연장선상에 서 있다. ‘기독교인의 정체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그 시대를 이해하는 동시에 지금 나의 신앙을 되돌아보게 한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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