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경제인사이드] 신기술 삼키는 중국… 세계 곳곳 방어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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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경제인사이드] 신기술 삼키는 중국… 세계 곳곳 방어戰

입력 2017-10-12 05:00 수정 2017-10-12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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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자본, 에너지·자원에 집중하다
최근 신산업 인수·합병 부쩍 늘어
각국 첨단기업 겨냥 M&A 가속도
한국 첨단기술도 호시탐탐 노려


지난달 13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례적' 결정 하나를 내렸다.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에 기반을 둔 반도체 회사 '래티스 반도체(Lattice Semiconductor Corp.)' 매각을 불허한다는 것이었다. 기업의 자유를 폭넓게 보장하는 미국에서 좀처럼 보기 드문 일이었다. 블룸버그 통신은 "대통령이 외국 투자자의 미국 기업 인수를 가로막은 것은 지난 27년간 4차례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왜 특정 사기업 매각을 반대했을까. 이유는 회사를 사겠다는 당사자 '캐넌 브리지'가 중국계 사모펀드였기 때문이다.

전 세계가 중국에 첨단 기술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중국은 2025년까지 인공지능(AI) 분야에서 세계 최고 지위에 오른다는 목표를 세우고 각종 첨단 기술을 흡수하고 있다. 첨단 기술을 보유한 기업 인수·합병이 가장 대표적이면서 공식적인 수단이다.

11일 블룸버그의 ‘차이나 딜 워치(China Deal Watch)’에 따르면 중국 기업들은 지난해 한 해에만 전 세계에서 무려 2445억 달러(약 277조원)를 각종 기업을 사들이는 데 썼다. 올해 우리 정부 예산 400조원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특히 2013년 이후부터는 인터넷, 소프트웨어, 반도체 등 첨단 기술 업체 인수 비중을 늘리고 있다. 2009∼2012년 중국 기업의 인수·합병 투자는 전통적 에너지와 자원 등 분야에 집중돼 있었다. 하지만 수년 전부터 ‘신산업’ 관련 인수·합병이 부쩍 늘었다. 2008년 1억3400만 달러에 불과했던 인터넷·소프트웨어 분야 인수·합병 규모는 지난해 266억 달러로 200배 증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래티스 반도체 매각을 가로막은 이유는 이 회사가 비메모리 반도체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서다. 첨단 기기에서 두뇌 역할을 하는 비메모리 반도체는 프로그램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활용이 가능하다. 군사적 이용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은 “국가 안보를 위해서라면 모든 필요한 조치를 다한다는 정부 방침에 따라 매각을 허락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중국 상무부 가오펑 대변인은 “미 정부는 공정하고 투명한 비즈니스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반발했다.

첨단 기술이 다양한 방식으로 중국에 흘러나갈 가능성이 커지면서 미국은 제도적 장치 보강도 서두르고 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미 정부는 재무부 산하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의 역할을 강화하는 방법을 모색 중이다. 중국이 CFIUS의 감시망을 피해 합작 벤처, 소액 지분 투자, 스타트업에 대한 조기 투자 등을 통해 첨단 산업에 대한 영향력을 넓혀가는 정황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CFIUS는 기업 인수·합병에 한해 조사하고 승인하는 권한을 갖고 있다. 존 코닌 공화당 상원의원은 CFIUS의 권한을 확대하는 법안을 준비 중이다.

유럽도 최근 중국 기업에 팔리는 첨단 기업이 늘면서 대책 마련을 고심하고 있다. 독일은 지난 6월 유럽연합(EU) 국가 가운데 처음으로 해외 투자자의 기업 인수·합병을 정부가 규제할 수 있도록 했다. 핵심 기술이 해외로 유출될 위험이 있다고 판단되면 정부가 인수를 불허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독일의 위기의식은 지난해 자국 산업용 로봇 제조 업체 ‘쿠카(Kuka)’ 매각에서 비롯됐다. 세계 정상급 로봇 기술을 갖고 있는 이 기업은 중국 가전업체 메이디에 인수됐다.

유럽 전체에서는 지난해 IT 기업 25곳이 중국에 팔렸다. 4년 전인 2012년에는 매각 건수가 1건에 불과했다. 장 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은 지난달 13일 유럽의회 기조연설에서 “해외 국영기업이 유럽의 항구나 에너지 기반시설, 방위산업체 등의 인수를 원할 때는 면밀한 조사와 토론이 필수적”이라면서 “외국의 투자를 감시할 새로운 EU의 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실상 중국을 겨냥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영국의 싱크탱크인 ‘헨리 잭슨 소사이어티’는 지난 7월 ‘민감한 분야에서 중국의 투자를 심사하는 새로운 절차를 시급히 고려해야 한다’는 제목의 보고서를 냈다. 보고서는 “중국의 투자가 핵심 하이테크 분야와 국가 기반시설로 이동하고 있다”면서 “장기적으로 영국 기업의 생존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테리사 메이 총리가 이끄는 영국 정부가 지난 6월 총선에서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해 국정 추진력이 약해졌음에도 불구하고 관련 조치를 강행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우리나라의 첨단 기술도 중국이 호시탐탐 노리는 대상이다. 자유한국당 이철우 의원이 산업통상자원부와 국가정보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2년부터 최근까지 우리 국가 핵심 기술 21건이 유출됐으며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인 12건이 중국 손에 들어갔다. 올해 7월 세계시장 점유율 1위인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세정 기술이, 지난해 1월에는 역시 세계시장 점유율 1위인 OLED 소재 기술이 중국으로 흘러나갔다.

국정원이 2013년 4월 OLED 핵심 기술을 빼돌리려는 중국인 여성 S씨를 검거한 사례도 있다. S씨는 국내 OLED 핵심 공정기술을 보유한 B사에 계획적으로 입사했다. 국책과제로 개발된 기술을 퇴직 직전 개인 이메일과 인터넷 메신저, USB 등을 활용해 빼돌렸다. 디스플레이 장비개발 업체에 근무하는 한국인 남편을 통해서도 차세대 군사용 디스플레이 기술을 빼냈다. 이를 중국 K사에 넘기려다 정보 당국에 붙잡혔다.

이에 따라 합작 형태로 중국 현지에 진출하는 기업의 기술 유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철우 의원실 관계자는 “우리 기업이 현지에 진출할 경우 중국 측은 정보를 접하기 굉장히 유리한 조건에 있게 돼 기술 유출이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기술 유출이 이뤄지지 않도록 하는 정부 차원의 정책적 지원은 부족한 편이다. 이 의원에 따르면 정부의 ‘기술유출 방지 시스템 구축 지원사업’은 예산이 부족해 최근 5년간 신청 기업의 37%만 지원받을 수 있었다. 관련 예산은 2015년 14억9000만원에서 올해 13억원으로 줄었다. 이 의원은 “기술 유출은 국가경쟁력 약화로 이어져 국민의 삶의 질까지 저하될 수 있다”면서 “첨단 기술 보호를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권기석 기자 keys@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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