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틴 루터 95개조 반박문 따라잡기 (上)] 종교개혁 시발점 된 루터 반박문의 성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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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루터 95개조 반박문 따라잡기 (上)] 종교개혁 시발점 된 루터 반박문의 성격은?

‘성명서’보다는 ‘토론 목적 발제문’에 가까워

입력 2017-10-12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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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루터가 1517년 10월 31일 95개조 반박문을 내건 독일 비텐베르크성 교회 문의 모습. 아래 사진은 1497년 영국 웨스트민스터에서 제작된 면죄부. 국민일보DB, 에든버러대학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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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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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루터는 1517년 10월 31일 독일 비텐베르크 성교회 정문에 95개조 반박문을 붙였다. 그는 반박문을 통해 로마가톨릭교회의 면죄부 판매를 비판했다. 이 짧은 글을 시작으로 중세교회는 격렬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여기까지는 기독교인이라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반박문에 무슨 내용이 담겼는지 물어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기성교인 중에서도 반박문을 끝까지 읽어본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이 때문에 만들어진 지 500년 지난 지금도 루터의 반박문을 둘러싼 오해와 뜬소문은 여전히 무성하다.

국민일보는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일인 오는 31일을 앞두고 두 차례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을 재조명한다. 김용주(분당두레교회) 목사의 저서 ‘루터 혼돈의 숲에서 길을 찾다’(익투스)와 최주훈(서울 중앙루터교회) 목사의 저서 ‘루터의 재발견’(복있는사람)을 참조했다.

오해Ⅰ: 루터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흔히 오해하는 바와 달리 루터의 반박문은 성명서보다는 토론 목적의 발제문에 가까웠다. 김 목사는 95개조 반박문의 원제목이 ‘면죄부들 효력의 포고에 대한 토론’이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루터는 반박문을 비텐베르크 성교회 정문에 붙인 뒤, 같은 내용을 당시 면죄부 판매에 앞장섰던 마그데부르크의 대주교 알브레히트와 도미니크 수도사 테첼에게 보내 토론을 제의했다. 당시 이 반박문이 쉽게 읽을 수 있는 독일어가 아니라 학자나 성직자들이 주로 쓰는 라틴어로 쓰였다는 점도 학술적 토론을 염두에 뒀음을 추측케 한다.

오해Ⅱ: 면죄부는 처음부터 부패의 상징이었다?

종교개혁 당시 논란이 됐던 면죄부의 성격은 오늘날의 이해와 결을 달리 한다. 면죄부는 주로 죄를 사해주는 증서로 이해되고 있다. 하지만 중세교회의 면죄부는 원래 죄를 용서하는 증서가 아니라 교회가 내린 형벌을 사면하는 증서였다. 이를 이해하려면 중세 가톨릭의 속죄 절차에 대해 알아야 한다.

최 목사는 로마가톨릭의 고해성사는 성찰, 통회, 정개(定改), 고백, 사죄(赦罪), 보속(補贖) 등 여섯 단계로 이뤄진다고 설명한다. 죄인은 우선 ‘성찰’을 통해 지은 죄를 생각해 내고 죄를 뉘우치며 ‘통회’한다. 같은 죄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결심이 ‘정개’이며, 사제 앞에 죄를 털어놓는 것이 ‘고백’이다. 이후 사제는 ‘사죄’해 주며 형벌을 치를 ‘보속’을 정해준다.

이때 죄를 지은 신자들은 기도, 금식, 구제, 순례, 건축 기부 등의 보속으로 죄에 대한 형벌을 치러야 했다. 죄를 지은 신자들은 공적인 고해 제도를 통해 죄를 자백하고 형벌을 감당한 뒤에 교회 안으로 다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만병통치약’으로 변질된 면죄부

면죄부는 죄의 사면이 아니라 죄로 인한 형벌을 경감하기 위한 장치로 처음 등장했다. 따라서 면죄부의 시초는 ‘면벌부’로 보는 게 보다 정확한 이해다. 문제는 시간이 흐르면서 면벌부가 점차 면죄부로 오용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테첼 같은 면죄부 부흥사들은 “면죄부 상자에 돈이 떨어지는 순간 연옥에 있는 영혼들이 그곳으로부터 뛰어 나온다”고 선전했다. 당시 교황 레오 10세는 베드로성당 건축을 위해 지금껏 지은 모든 죄를 용서하는 ‘완전 사면 면죄부’를 발행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일부 형벌만 감소시킬 수 있었던 면죄부는 어느새 하나님만 용서할 수 있는 죄까지 해결할 만병통치약이 돼버렸다. 오늘날 우리가 읽고 있는 95개 반박문은 면벌부가 면죄부로 타락하는 역사적 흐름 속에서 탄생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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