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한장희] 혁신성장과 장하성

국민일보

[데스크시각-한장희] 혁신성장과 장하성

입력 2017-10-11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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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를 나흘 앞둔 지난달 26일 문재인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혁신성장 집행 전략을 속히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다음날 김광수 전 금융정보분석원장이 한국거래소 신임 이사장 지원 의사를 철회했다. 김 전 원장은 가장 유력한 후보였다. 그의 뒤에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있다는 얘기가 돌았다.

지난 7월에 만난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J노믹스’의 컨트롤타워로 장 실장을 꼽았다. 청와대는 매트릭스 조직이며, 현안회의를 통해 추진해야 할 프로젝트가 결정되면 정책실장이 수석보좌관 등 담당을 지정해준다고 했다. 금융위원장 금융감독원장 인선에선 지명자들과 장 실장의 인연이 화제가 됐다.

정부 설명으론 J노믹스는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를 세 개의 축으로 한다. 그런데 최저임금 인상 등 현 정부가 내놓은 정책들은 소득주도성장 일색이었다. 장 실장을 위시한 소득주도성장론자들이 주도하고 있다는 점을 의심하는 사람도 없었다. J노믹스의 J가 ‘장하성’을 일컫는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왔다. 그러는 사이 혁신성장을 강조하는 ‘변양균 라인’의 입지는 좁아졌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부동산 정책과 증세 논의 과정에서 ‘패싱’ 논란에 시달리며 자존심을 구겼다.

사회 불평등을 연구해 왔던 경제학자가 정권 실세로 변신해가는 것을 시샘하는 목소리들도 때맞춰 흘러나왔다. 장 실장이 53억원 상당의 주식을 포함, 93억원의 재산을 신고하자 ‘현대판 데이비드 리카도’라는 비아냥도 있었다. 리카도는 주식 투기로 엄청난 재산과 토지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지주의 이익이 사회의 다른 모든 사람의 이익을 해친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진력했던 고전 경제학자다.

보수 진영은 “‘경제학 족보’에도 없는 소득주도성장론을 들고 나와 한국 경제를 실험 대상으로 삼고 있다”고 힐난했다. 일부 경제학자도 동조했다. “빵을 먹을 수 있는 것은 제빵사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이익에 대한 그의 관심 덕택”이라는 애덤 스미스의 말처럼 경제활동의 동인은 이기심인데 ‘소득분배 개선을 통한 경제성장’이라는 개념은 선의에 기댄 순진한 생각이라는 것이다. 또 공무원 증원 등 정부 재정으로 단기 효과를 노릴 수 있어도 지속 가능한 성장 전략은 아니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어찌됐든 경제 컨트롤타워 내부에 변화의 기운이 감지된다. 문 대통령이 혁신성장을 강조하고 나섰고, 장 실장 추천으로 알려진 인사가 사퇴한 점 등을 보면 그렇다. 대선 캠프 출신들이 장 실장의 독주를 견제하고 나섰다는 얘기도 들린다. 때마침 눈병을 털고 표정까지 환해진 김 부총리는 최근 들어 부쩍 공개 발언이 많아졌다.

물론 장 실장은 아직 건재하다. 연휴에도 출근해 비서실장·장관들과 가계부채 대책 등을 논의했다. 일머리에 대한 평가도 나쁘지 않다. 관료 출신 한 장관은 “학자 같지 않고 공직을 오래 했던 분처럼 일처리가 깔끔하다”고 했다.

장 실장 얘기를 길게 한 것은 두 가지 때문이다. 우선 소득주도성장의 방향성을 되돌려서는 안 된다는 제안을 하고 싶어서다. 물론 정책의 무게는 분배보다 성장에 둬야 한다고 본다. 대기업·수출주도형이나 빚내서 집 사라는 낡은 성장 전략을 다시 꺼내라는 게 아니라 공정경쟁의 틀 안에서 기업가 정신, 즉 모험심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게끔 여건을 조성해줘야 한다는 얘기다. 폴 크루그먼 등 석학들이 “분배의 실패로 불평등이 커지고 있으니 정부의 적절한 개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 점도 십분 정책에 반영해줬으면 한다. 사회 안전망이 튼튼하고, 촘촘해진다면 실패 위험을 무릅쓰고 창업에 나서는 혁신적인 활동은 늘어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제언은 성장 또는 분배라는 명분에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다. 명분에 집착해 편을 가르고, 인사를 둘러싼 암투를 벌인다면 현 정부 경제정책도 희망이 없다. 선의 역시 이기심으로 비칠 것이다.

한장희 경제부장 jh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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