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임정희] 문화비축기지와 공간 변화

국민일보

[기고-임정희] 문화비축기지와 공간 변화

입력 2017-10-13 18:03 수정 2017-10-13 21:21
  • 국민일보 카카오플러스 친구등록하기

기사사진

산업유산을 품은 새로운 공공 도시공원 ‘문화비축기지’가 14∼15일 개원을 기념하는 축제, ‘천 개의 테이블, 만인의 상상’으로 문을 활짝 연다. 산업사회의 중요한 에너지원인 석유를 비상사태에 대비하여 비축하던 ‘마포 석유비축기지’가 쓰임새를 다하고 방치된 지 30여년 만의 일이다. 문화비축기지는 단순한 건축물의 차원을 넘어 사람의 상상력을 공간을 통해 얼마나 진전시킬 수 있는가를 실험하고 도전하는 장소로 완성됐다. ‘사람들이 먼저 도시를 주조하고, 그 후에는 도시가 사람들을 주조한다’는 이데올로기는 오랫동안 유효했다. 특히 올바른 형태에 대한 믿음을 지녔던 지난 세기에는 많은 도시 계획가, 건축가들은 오래되고, 그다지 좋지 않은 형태에 대해 거부 반응을 일으키곤 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내는, 자유로운 형태의 건축적 요소들로 이루어진 통치체계를 건립하기 바랐고, 이전에 지어진 유산들을 가능한 많이 없애버리고 싶어 하면서 백지로부터의 새로운 시작을 꿈꾸었다.

그러나 수많은 작용들이 눈과 손으로부터 멀어져 마이크로프로세서의 숨겨진 곳에서 일어나는 디지털현대에서는 이전의 ‘물질-패티쉬’, ‘형태의 권력’에 대한 믿음이 의미를 잃는다. 그에 따라 계획가들, 건축가들도 지어진 환경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져야 한다. 그들은 기존에 이미 존재하는 상태에 맞춰 자리를 펴는 법, 발견되는 기존 건물들을 우리 시대와 사용에 맞춰 변형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숭고한 유토피아를 따르는 대신 실용주의에서 그 답을 찾으면서, 세상은 새로 발명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교리도 받아들여야 한다. 이 부분을 개선하고, 저 부분에 덧붙이는 것으로 충분하며, 큰 것은 작은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세계의 절대적인 가능성을 믿는 대신 현재 상태가 보완된 버전을 바라면서, 이 버전이 당연히 계속해서 다음 버전들로 이어질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공간을 소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또 다른 사람들이 누릴 수 있도록 제공하기 위해서. 그리고 시민들이 자신들에게 맞추어 공간을 변형시키고, 더 발전시켜나가고, 새로 정의한다는 것을 신뢰하므로.

석유비축기지라는 산업유산이 문화비축기지로 재활용되기까지의 과정이 치열한 논의와 협의로 점철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마포석유비축기지 재생 및 공원화사업’의 타당성 검토가 시작된 2012년부터 지금까지도 다양한 단계에서의 오랜 논의와 치열한 협의가 진행 중이다. 도시의 공공공간으로서 문화비축기지가 ‘이미 그러한 것’을 확정짓기보다는 ‘되어지는 것’, 즉 움직임과 과정으로부터 만들어지는 것이다.

도시가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졌음에도 계속해서 사람의 통제권을 벗어나는 것은 도시가 갖는 수수께끼다. 도시-기계를 막힘없이 굴러가게 하기 위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규제와 규칙, 계획이 존재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마지막에 어떤 공간이 얼마나 활기차고 매력적인지를 규정하는 것은 기능적인 부분이 아니다. 공간 변화는 강제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건축이 얼마나 정성들여 만들어졌는지, 얼마나 많은 벤치와 잔디밭, 공연장과 전시장이 전문 프로그램들을 제공하는지, 그리고 조명디자인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하고는 관계가 없다.

임정희 문화비축기지 협치위원장

많이 본 기사

반려인 연구소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