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영 칼럼] 원전 공론화 그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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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영 칼럼] 원전 공론화 그 이후

입력 2017-10-17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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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부터 당분간은 원전 문제로 시끌벅적할 것 같다. 신고리 원전 5, 6호기 공론화위원회는 시민참여단의 의견을 정리해 오는 20일 정부에 권고안을 제출한다. 정부는 이를 토대로 24일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무회의에서 신고리 5, 6호기 건설을 중단할지 재개할지 결론을 낸다. 문 대통령이 “어떤 결과가 나오든 이를 존중해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밝힌 바 있어 공론화위의 결말에 따라 신고리 5, 6호기의 운명이 갈린다.

공론화위 위원들은 20일 발표 시점까지 외부와 접촉을 차단한 채 17일부터 합숙에 들어갔다. 최종적인 4차 조사 결과, 건설 중단과 재개에 대한 참여단의 응답 차이가 뚜렷하면 권고안은 간단해진다. 둘 중 하나를 담으면 된다. 차이가 오차범위 이내면 조사결과를 종합적으로 분석한 서술형태의 권고안이 마련된다.

취재를 해보니 박빙 판세가 한쪽으로 다소 기운 것으로 여겨졌다. 일부 참여단의 전언을 통한 탐색이라 꼭 들어맞을지 알 수 없지만 분위기가 그랬다. 예상대로라면 공론화위의 부담은 적다. 그러나 사후 파장은 여전히 거셀 것이다. 어느 쪽으로 매듭이 지어져도 큰 반발 없이 수용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 벌써 불복 움직임이 감지되는 등 부작용이 예사롭지 않다. 정부의 결론은 묵은 갈등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대립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사회적 관심이 높은 사안을 공론으로 해결하려는 발상은 옳다. 특히 우리 국회처럼 민의를 제대로 ‘대의하지 않는’ 현실에서는 대의제에 대한 최소한의 보완책 또는 방어기제가 될 수 있다. 전북대 오현철 교수는 ‘공론조사와 민주주의’란 글에서 공론조사의 장점으로 대표성, 평등성, 전문성, 합리성, 책임성, 갈등예방, 민주주의 승화 등 일곱 가지를 꼽았다. 일각에서는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처럼 공론조사를 법이나 규정에 명시하고 이를 주관하는 기관을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론분열이 극심한 국가 정책이나 국민 생활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사안은 공론조사에 붙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의 경우 원래 취지인 ‘숙의(熟議) 민주주의’를 제대로 경험했는지 의문이다. 정부의 탈원전 선언으로 불공정 시비를 안고 시작한데다 기간이 3개월로 너무 짧은 점 등 근원적 한계가 있었다. 공론화 과정에서는 양측이 모두 편향성 논란을 지적했다.

문재인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접하면서 늘 궁금한 의문이 있다. 왜 이렇게 성급하고 도발적으로 원전을 이슈화했냐는 점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 한 달여 만인 지난 6월 19일 고리 1호기 영구정지 기념식에서 탈원전을 선언했다. 신규 원전건설 백지화, 설계 수명 연장 불허,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원전 안전기준 대폭 강화 등 구체적인 지침까지 밝혔다. 원전에 대못을 박았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탈원전이 대선공약이었다 하더라도 취임하자마자 이처럼 민감한 문제를 내세워 여론을 들쑤신 이유가 납득되지 않는다. 국방개혁, 검찰개혁 등 새 정부 출범에 맞춰 처리해야 할 국정과제가 쌓였고, 민심을 얻어 이를 관철하는 것이 중차대한 상황에서 화급하지 않은 원전을 왜 논란의 중심에 던졌을까. 원전전문가 지인에게 물어도 속 시원한 대답을 못 들었다. 설마 이 문제가 가공할 만한 파괴력을 지닌 사안인지 몰랐을 것으로 믿고 싶지는 않다.

자승자박이랄까. 탈원전은 두고두고 정부의 발목을 잡을 것으로 본다. 신고리 5, 6호기에서 촉발된 갈등은 사회 여러 부문에서 또 다른 반목을 증폭시켜 정부를 힘들게 할 것이다. 이미 ‘공사중단=진보’ ‘공사재개=보수’라는 이념적 덧칠까지 보태진 상태다. 문재인정부가 내세우는 기치는 다수 국민들의 공감과 성원을 얻고 있다. 주도면밀하지 않은 ‘원전 헛발질’로 그 가치마저 훼손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당장 20일 이후의 후폭풍이 걱정이다.

정진영 논설위원 jy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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