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원준 칼럼] 아직 살만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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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원준 칼럼] 아직 살만한 세상

입력 2017-10-24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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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서울교통공사에 편지 한 통이 배달됐다. 발신인 이름은 없고 5만원권 20장, 100만원이 들어 있었다. 보낸 이는 자신을 73세 노인이라 소개하며 이렇게 적었다. “어려서 왼손 전체에 화상을 입었습니다. 나중에 장애진단을 받아보려 의사를 만났더니 저를 동정해 그렇게 해줬습니다. 그때부터 지하철 무임승차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공짜로 타는 게 기분이 좋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불편해졌다고 한다. 오랜 생각 후 사죄의 마음을 담아 요금 일부를 보내니 받아주면 고맙겠다는 내용이었다.

노년에 접어들어 삶을 돌아보면 이런 일에도 생각에 미치는 모양이다. 짐작건대 그가 받은 장애인 판정에 뭔가 정당하지 않은 구석이 있어 마음의 짐이 됐던 듯하다. 어린 시절 슬쩍했던 물건값, 몰래 탔던 기차요금을 뒤늦게 보냈다는 사연은 해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데, 올해는 지하철이었다. 이 노인의 이야기를 접하며 ‘이렇게 후회할 일을 지금 하고 있지 않은가’ 생각해본 게 나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지난 17일에는 안병호 전남 함평군수가 편지를 받았다. 경기도 평택의 윤순자(77) 할머니가 보냈다. 할머니는 이달 초 친구 7명과 함평의 온천에 놀러갔다. 목욕을 마치고 밥을 먹어야겠는데 마땅한 식당을 찾지 못했다. 기차역에서 온천까지 태워준 택시기사 정순점(65·여)씨와 연락이 닿아 식사할 곳을 물었더니 정씨는 할머니 일행을 식당 대신 자기 집으로 안내했다. 밥과 반찬과 과일을 대접하고, 돌아가는 기차에서 먹도록 김밥까지 사주더라는 내용이 할머니의 편지에 담겨 있었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의 특징은 알려지는 걸 매우 겸연쩍어 한다는 것이다. 안 군수는 정씨에게 전화를 걸어 할머니의 감사를 전했다. 정씨는 “당뇨가 있다고 하시기에 집밥을 드린 것뿐인데…” 하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예전에 ‘인심’이라 부르던 많은 일이 이제는 ‘선행’으로 분류된다. 그만큼 세상이 각박해지고 있어서일 테다.

온라인 공간에는 많은 이야기가 올라온다. 입소문을 겨냥한 ‘바이럴 마케팅’이 등장할 만큼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는 엄청난 확산력을 가졌다. 그래도 워낙 많은 정보가 쏟아지기에 온라인 스토리의 절대다수는 그냥 묻혀버리고 만다. 어떤 이야기가 좋아요를 받으며 공유되는지 분석해본 이들은 ‘공감과 분노’라는 키워드를 찾아냈다. 내 일 같은 이야기, 읽다보니 화가 나는 이야기에 우리는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가짜뉴스를 만드는 사람은 이런 심리를 겨냥할 게 분명하다.

지난 2일 모 대학 학생들의 페이스북에 어느 의대생이 글을 올렸다. ‘어디에라도 말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요’로 시작해 ‘저 같은 게 의사가 될 수 있는 거예요?’라며 끝을 맺었다. 그는 전날 지하철역 계단에서 갑자기 쓰러지는 아주머니를 목격했다. 몸이 나무토막처럼 뻣뻣해지더니 고꾸라졌다. 돌려 눕혔지만 의식이 없었다.

“기도 확보? 인튜베이션? 엉뚱한 생각이 머리에서 맴돌았습니다. 그러다 심폐소생술을 했습니다. 너무 정신이 없어 (뼈가) 부러지도록 눌렀어요. 아주머니 남편이 역에 있던 AED(자동심장충격기)를 갖다 줬습니다. 배운 대로 했지만 여전히 숨을 안 쉬었습니다. 119구급대가 아주머니를 실어가고 오늘 아저씨(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아주머니는 끝내 숨을 거뒀다. 남편은 학생에게 고맙다고 했다. 학생은 ‘응급의학에 더 관심을 가졌다면 살리지 않았을까’ 자책하고 있었다. 몇 해 전 ‘의대생 성추행’ 사건은 공분 속에 이슈로 떠올라 엄한 처벌이 이뤄졌다. 그것이 만들어낸 경각심만큼 세상은 조금 더 좋아졌을 것이다. 불의를 보면 반드시 분노해야 한다. 하지만 세상을 바꾸는 힘이 분노에만 있지는 않다. 의술의 무게를 체험한 학생 이야기에 위로와 응원을 보내는 것, 노인의 편지를 마주쳤을 때 한 번 더 눈길을 주는 것 역시 세상을 아직 살만하게 만드는 힘이 된다.

태원준 온라인뉴스부장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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