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호 칼럼] 호랑이 등 위에 올라탄 윤석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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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호 칼럼] 호랑이 등 위에 올라탄 윤석열

입력 2017-10-31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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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검장 윤석열은 지금 호랑이 등에 올라탔다. 본인이 원한 것도 아니고, 누구도 이렇게 극적인 역할을 예상하지는 못했으리라. 호랑이 등에 올라타진 형국, 기호지세(騎虎之勢)를 흔히들 잘나가는 기세를 말하기도 하지만 달리는 호랑이에서 내릴 수 없는 상태가 더 정확하다. 내리면 호랑이에게 물려 죽는다. 그러니 이미 시작한 일을 중간에 그만둘 수 없다. 그에게는 현 정권이 적폐라고 분류한 온갖 것들이 몰려온다. 처리 방향이 그 손에 달려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보수건 진보건 과거 정권들은 은밀한 하명 수사, 또는 정교한 언론 흘리기로 검찰에 민감한 수사를 던져줬다. 정적 제거나 정치에 활용하려는 의도였던 게 적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많은 검사들은 충견이나 행동대장 역할을 충실히 했다. 이들이 검찰의 주류였고 요직을 독식했다. 지연과 학연이 밀어주고 당겨주는 기본 요인이기도 했다. 현 정권은 방식을 달리한다. 수사 의뢰라는 공개적인 방법으로 검찰에 수사 대상을 적시한다. 전 정권에서 생산된 문건을 흘리는 방식의 의혹 제기에는 정치보복으로 비치는 것들도 있다. 지지세력에게 ‘나 잘하고 있지’라고 한건 보여주기식 주장도 있다. 검찰이 이런 거 어설프게 덥석 물었다간 그나마 올바르고 필요한 적폐청산도 어그러지기 십상이다.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것 외에 윤석열이 할 건 딱 두 가지다. 정보기관과 검찰의 적폐에 대한 책임 묻기. 국정원과 군의 일부가 국가와 정파를 구분 못하고 세금을 써가며 국가 조직을 악용한 행위에 대해서는 반드시 죗값을 물어야 한다. 이건 민주주의 근간을 근본적으로 훼손한 것이고, 이런 행위가 존재하는 한 국가나 정부는 개인의 일탈에 대한 어떤 책임을 물을 자격이 없어지게 된다.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정권 실세들에게 뇌물로 줬다는 의혹은 ‘이게 나라냐’는 참담함을 또 느끼게 만든다. 안보에 최대 역량을 쏟아야 할 기관들이 정권 안위를 위한 정치적 업무에 조직과 예산을 불법 투입했다는 것은 그들이 적국으로 상대하는 북한을 결과적으로 이롭게 하는 행위 아닌가.

검사가 검사의 수사를 방해하는 엽기적 행위가 벌어졌다. 국정원에 파견 나간 검사들이 댓글 수사와 관련된 국정원 압수수색과 이후 재판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왜곡·조작·허위진술을 사주했다는 게 거의 드러나고 있다. 파견을 마치면 다시 검찰로 돌아갈 검사들이 사법 방해가 불법인 줄 뻔히 알면서 자기 조직의 활동을 알아서 방해했을까. 당시 검찰 내부 또는 더 윗선의 지시나 묵인이 있지 않았을까. 수사는 확대돼야 한다. 평상시 검찰 내부에서 정파적 이유나 이런저런 청탁으로 수사 방향을 바꾸거나, 아예 덮거나, 어떤 이를 봐주거나 하는 행위가 암암리에 있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단정하는 건 지나친 생각인가. 이 사건이야말로 검찰 개혁이 왜 필요한가를 단적으로 드러내준다. 최근 전현직 검사(장)들의 잇단 처벌은 견제 받지 않았던 적폐들이 물 위로 떠오르기 때문일 게다. 특별한 사례가 아닐 수도 있다.

호랑이 등에 탄 윤석열은 이 두 가지 고름을 완전히 빼내야 한다. 다른 건 범죄 혐의가 드러나면 수사하면 된다. 괜히 정치보복 시비로 해야 할 일을 망치지 말길 바란다. 특히 검찰 내부 수사는 심적 갈등이 있겠다. 그러나 어쩌랴, 시대와 상황이 검찰을 검찰답게, 정보기관을 정보기관답게 만들라고 역할을 준 것이니. 호랑이 등에서 내릴 수 없는 게 공직자로서의 운명이라면 호랑이를 제어해 제대로 끌고 갈 방법을 연구해봐야 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었다.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위법을 지시하면 따르지 않는다.”(2013. 10. 21 국정감사) “검사가 수사권 갖고 보복하면 그게 깡패지 검사냐.”(2016. 12. 2 특검 수사팀장 합류) “(청와대 하명이라도) 중심 잡고 수사하겠다.”(2017. 10. 23 국정감사) 자신의 말에 답이 있다. 이 말을 믿는다.

김명호 수석논설위원 m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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