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준동] 남진과 나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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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김준동] 남진과 나훈아

입력 2017-11-06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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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가수 남진을 무척 좋아했다. 무엇보다 귀공자 같은 외모가 마음에 든다고 했다. 늘 부르는 노래가 있었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년 살고 싶어∼” 남진의 ‘님과 함께’다. 반면 아버지는 나훈아 팬이다. 남성적인 외모에 애절한 가락이 심금을 울린다고 했다. 어머니가 ‘님과 함께’를 읊조리면 맞대응한다. “코스모스 피어있는 정든 고향역, 이쁜이 꽃뿐이 모두 나와 반겨주겠지, 달려라 고향열차 설레는 가슴안고∼” 나훈아의 ‘고향역’이다.

남진(71)과 나훈아(70)는 1970년대 숙명의 라이벌이다. 두 사람은 성격, 노래, 고향까지 다르다. 화려한 의상을 좋아한 남진은 ‘한국의 엘비스 프레슬리’로 불렸고, 수수한 차림을 즐겼던 나훈아는 비음 섞인 간드러진 목소리로 ‘트로트의 황제’라는 애칭을 얻었다. 모든 것이 대조적이었다. 남진은 당대 영화배우들도 부러워할 꽃미남이었고 나훈아는 남성적이며 서민 풍모에 믿음직한 느낌을 주었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의 출신지는 당시 야권의 젊은 기수이자 정치적 맞수인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의 고향과도 일치했다. 지역감정도 어느 정도 작용했다는 얘기다. 남진은 2013년 가진 한 인터뷰에서 “당사자인 내가 봐도 참 절묘하다는 생각이 드는 운명적 라이벌”이라며 “정계로 치면 YS(김영삼)와 DJ(김대중) 관계와 비슷하다”고 회고했다. 라이벌 전이 한창일 당시에는 직장은 말할 것도 없고 가족 구성원들까지 남진과 나훈아 편으로 나뉘어 신경전을 벌였을 정도다.

하지만 2006년 나훈아의 돌연 잠적으로 두 사람의 경쟁 관계는 막을 내리는 듯했다. 나훈아는 세 차례의 이혼과 신체훼손설 등 온갖 루머에 시달렸고 “마이크 잡기가 힘들다”며 11년간 칩거했다. 그런 그가 화려하게 컴백했다. 3∼5일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드림어게인(Dream Again)’ 콘서트에서 예전 그 모습 그대로 무대를 휘어잡은 것이다. 사흘 동안 1만명의 관객이 운집했고 티켓은 일찌감치 매진됐다. 공연은 12월까지 부산, 대구로 이어진다. 이에 질세라 남진도 12월 서울, 대전, 수원에서 잇따라 공연을 개최한다. 3일에는 남진과 나훈아가 실시간 검색어에서 1, 2위 순위를 번갈아 바꿔가며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기도 했다. 10여년의 세월을 넘어 다시 형성된 두 거장의 맞대결로 올드팬들의 가슴이 설렐 듯하다. 고향의 부모님도 그러실까.

김준동 논설위원, 그래픽=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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