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송세영] 어느 변호사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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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송세영] 어느 변호사의 죽음

입력 2017-11-08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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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국가정보원 법률보좌관실 소속 변호사였다. 2남1녀 중 막내로 미혼이었던 그는 자랑스러운 아들이자 동생이었다. 2006년 31세의 늦은 나이에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정부 기관을 거쳐 2011년부터 국정원에서 일했다. 국정원으로 옮긴 뒤에는 부모님 집에서 나와 경기도 과천에 혼자 오피스텔을 얻어 살았다. 가족도 그가 사는 곳을 몰랐다. 대한변호사협회에서 소속변호사를 검색해 봐도 그의 이름엔 ‘미개업’ 외에 아무런 정보도 나오지 않는다.

비극의 단초는 2013년 10월 원세훈 전 국정원장 수사와 재판에 대응하기 위해 만든 국정원 현안 TF에 배속되면서 시작됐다. 현안 TF에선 검찰 간부 출신의 감찰실장과 검찰에서 파견 나온 검사들이 함께 일했다. 가짜 사무실을 만들어 압수수색 나온 서울중앙지검 검사들을 유인하고 국정원 직원들이 검찰과 법원에서 허위 진술을 하게 했다. 검찰 수사와 법원의 재판을 방해한 명백한 불법행위였다. 국정원이 법을 준수하도록 심사하고 자문해야 하는 법률보좌관실이 관여해선 안 될 일이었다.

그가 현안 TF의 불법행위에 어느 정도 개입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입사 3년차 5급 사무관이자 변호사 경력뿐이었던 그가 깊숙이 관여했을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현안 TF의 공작은 치밀했다. 검찰과 법원은 완벽하게 속아 넘어갔다. 국정농단으로 정권이 교체되는 일이 없었다면 완전범죄가 됐을지 모른다. 지난 9월 국정원의 정치개입 수사가 본격화된 후에도 검찰의 수사망은 다가오지 않았다.

반전은 우연한 계기로 일어났다. 자신은 구속됐는데 불법행위를 지시한 윗선의 구속영장은 기각된 데 분노한 국정원의 한 간부가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검찰로선 용인하기 힘든 사법방해 행위였다. 제 식구가 연루돼 있었지만 수사를 주저할 수 없었다.

그도 지난달 23일 월요일 참고인 자격으로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조사 직후에는 검찰 수사를 놓고 동료들과 농담까지 나눌 정도로 개의치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26일 목요일에는 사색이 다 된 표정으로 출근했다. “제가 다 뒤집어써야 하는 분위기로 가고 있어요.” 그가 불안해하며 남긴 말이다. 이틀 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가족도 동료들도 제대로 모른다. 현안 TF에서 함께 일했던 검사들과 몇 차례 통화를 나눈 것으로 알려져 있을 뿐, 또 다른 누군가와 만나거나 통화를 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는 불길한 인사말을 남긴 채 27일 하루 휴가를 냈다. 28일 토요일에는 강원도 원주로 가서 고등학교 때 단짝친구를 만났다. 뭘 하나도 먹지 못해 음료수를 하나 시켰는데 반병도 마시지 못했다는 게 친구의 증언이다. 그는 29일 오전 9시30분 강릉 주문진 해변에 나타났다. 다리 위에 차를 세워놓고 투신했지만 행인의 신고로 해양경찰에 구조됐다.

2시간 만에 귀가 조치된 그는 이날 오후 군복무를 했던 춘천으로 갔다. 춘천은 그가 군법무관 차량 운전병을 하며 처음으로 법률가의 꿈을 키웠던 곳이었다. 이튿날인 30일 밤 9시10분쯤 소양강댐 주차장에 세워 놓은 차량 안에서 그는 숨진 채 발견됐다. 유서는 없었다. 가족에게 마지막 인사도 남기지 않았다.

그의 마지막 행적을 보면 의문투성이다. 그는 반드시 죽어야 하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주문진에서 한 차례 실패를 통해 죽음의 공포를 겪고도 다시 죽으려 했다. 그에겐 그럴 이유가 없었다. 처벌을 받아도 무거울 리 없었다. 국정원에서 일을 못하게 돼도 변호사로 개업하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다급하게 스스로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그의 죽음은 자살인가, 사실상 타살인가. 그와 함께 국정원 현안 TF에서 일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던 변창훈 서울고검 검사도 6일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들의 잇따른 죽음은 우연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유족들은 더 이상 그가 국정원 정모 변호사로 불리길 원치 않는다. 그는 정치호 변호사다.

송세영 사회부장 sysoh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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