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이명희] 老慾을 넘어 老醜다Ⅱ

국민일보

[여의춘추-이명희] 老慾을 넘어 老醜다Ⅱ

입력 2017-11-09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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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유명한 광고 카피다. 어르신들한테 욕먹을 소리지만 100% 동의하지는 못하겠다. 나이 들고 보니 나 또한 ‘꼰대’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세상은 LTE급으로 바뀌는데 유연해지기가 쉽지 않음을 고백한다.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이 올해 초 “대통령과 장관,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을 포함한 모든 공직에 최장 65세 정년 도입이 꼭 필요하다”고 했다가 몰매를 맞았다. 의도야 어떻든 그의 주장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늙어가는 사회는 역동성이 떨어진다. 나라가 활력이 있고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효율적으로 대응하려면 젊은층이 주축이 돼야 한다. 주택, 교육, 저출산 등 당면한 우리 사회 문제를 가장 뼈저리게 느끼고 대안을 찾을 수 있는 것도 그들이라고 믿는다.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출산억제 정책을 펴던 1970년대에 강남 졸부 탄생을 지켜보며 부와 명예를 욕망했던 이들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두는 훈수래야 탁상공론이지 않을까 싶다.

3년 전 이 코너를 통해 박근혜정부의 ‘신(新)386군단’ 얘기를 썼다. 1930년대에 태어나 60년대에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80세를 바라보는 올드보이들이 국정의 중책을 맡고 각계에 포진했다. 노태우정부에서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을 지낸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을 비롯해 이경재 방통위원장, 남재준 국정원장, 유흥수 주일대사 등이 대표적이다. 올드보이들의 활약이 역사의 시계를 얼마나 뒤로 돌려놨는지는 새삼 복기할 필요도 없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의 국정농단에 침묵하고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했다. 세월호 기록 은폐를 시도하고 반발하는 공직자들을 쳐낸 것도 호위무사들이다. 비판은 없는 예스맨의 전범이다. 이들은 최고 권력자를 그림자처럼 보좌하고 권력에 비판적인 ‘종북 세력’을 몰아내는 게 지극히 당연하다고 느꼈을 거다. 40여년 전 유신시대엔 그랬으니까.

문재인정부 들어 올드보이들이 귀환하는 것은 그래서 우려스럽다. 두 번의 보수정권을 거치다보니 10년을 초야에 묻혀 있다가 대선 캠프에 몰려갔던 김대중정부와 노무현정부 시절 관료나 지난 총선에서 낙선한 정치인들이다. 장관 위에 위원회를 만들어 감투를 쓰고 공직에 줄을 대다 실패한 인사들은 민간협회를 기웃거리고 있다. 2014년 세월호 참사에서 드러난 관피아(관료+마피아) 적폐도 잊은 듯하다. 최근 정부로부터 압력을 받고 물러난 김인호 무역협회장 후임으로 전윤철(78) 전 경제부총리와 김영주(67) 전 산업자원부 장관이 경합을 벌이다 김 전 장관이 내정됐다고 한다. 참여정부 시절 김용덕(67) 전 금융감독위원장이 며칠 전 손보협회장에 취임했고 김효석(68) 전 의원은 대한석유협회장을 꿰찼다. 김영삼정부 시절의 홍재형(79)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은 은행연합회장에 거론된다. 홍 전 부총리 측은 업무 능력보다 “매일 헬스장을 찾아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고 건강을 강조한다고 하니 ‘웃픈’ 현실이다. 이들이 핀테크나 비트코인 등을 알지 모르겠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재무부에서 사무관 하던 시절에 장관을 지낸 분이 연봉 수억원 욕심에 밑으로 오겠다고 하니 말발이 먹힐지 의문이다. 이 정도면 노욕(老慾)을 넘어 노추(老醜)다.

최근 삼성 사장단 인사에서 사장 승진자의 평균 나이는 55.9세다. 민(民)이 관(官)보다 경쟁력이 높아진 것은 수십년 됐다. 민간 중에도 일반 대기업보다 금융산업이 더 낙후됐다. 관치와 정권 따라 바뀌는 낙하산 인사 때문이다. 올드보이들이 점령한 세상은 미래가 없다. 공자는 군자가 경계해야 할 세 가지 중 하나로 노년기의 탐욕을 들었다. 당나라 시인 백거이는 풍유시 ‘불치사(不致仕)’에서 눈이 어두워져 공문서를 읽지 못하고 허리가 굽어도 명예와 이익을 탐하며 관직에서 물러나지 않는 것을 꾸짖었다. 올드보이들이 경청해야 할 경구다.

이명희 논설위원 mheel@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