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칼럼] 누구를, 무엇을 위한 반미시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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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홍 칼럼] 누구를, 무엇을 위한 반미시위인가

입력 2017-11-12 17:41 수정 2017-11-13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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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일, 한·일, 미·중, 한·중, 중·일 정상회담이 잇따라 열린 지난주는 말 그대로 ‘슈퍼위크’였다.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교차 회동해 한반도는 물론 세계적 위협으로 등장한 북핵 문제를 논의했다. 이견이 없지 않았지만, 한반도를 에워싸고 있는 강대국 정상들이 잔혹한 독재자 김정은의 핵 도발을 중단시켜야 한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다양한 해결 방안들을 모색한 점은 의미 있는 성과라고 하겠다.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지난 7일 정상회담 역시 비교적 성공적이었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We go together(함께 갑시다)’라는 메시지를 주려 심혈을 기울였고, 트럼프 대통령은 북핵 문제와 관련해 ‘한국을 스키핑(skipping·건너뛰다) 않겠다’고 화답했다. 다행스럽다는 생각과 함께, 미·일 정상과 미·중 정상은 양국 관계를 계속 업그레이드시켜 나가는 마당에 한·미 정상회담은 엇박자 우려를 해소하는 수준이어서 씁쓸한 느낌이 없지 않다.

양국 정부는 차곡차곡 신뢰를 쌓아가는 노력을 배가해야 한다. 동맹을 훼손하는 일체의 언행부터 자제하는 게 옳다. 그럼에도 문재인정부 내에서 미·중 사이의 균형외교를 언급하거나, 이른바 ‘3불(不)’ 원칙 고수를 강조하는 등 한·미동맹 강화에 도움이 안 되는 발언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여전히 아슬아슬하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 방문 환영 일색이었던 일본·중국과 달리 트럼프 대통령 방한 기간 중 반미 시위가 극성을 부렸다. 220여개 단체가 모였다는 ‘노(No) 트럼프 공동행동’이 시위를 주도했다. 공감하는 시민들이 적어서인지 규모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내용은 고약했다. 그들은 트럼프 대통령 방한 이전부터 트럼프 대통령이 가는 곳마다 쫓아다니며 반미 집회를 열겠다고 공언했다. 그리고 실제 7일 광화문에 모여들었고, 급기야 트럼프 대통령을 태운 차량에 물병과 야광봉, 종이컵 등을 던져 그 차량이 반대편 도로를 이용해 500m 넘게 역주행하는 일이 벌어졌다. “양키 고 홈(Yankee Go Home)!” “전쟁광 트럼프는 물러가라”는 구호가 난무했고, ‘트럼프, 우린 너를 환영하지 않는다(Trump, NOT welcome!)’라고 적힌 플래카드도 흔들었다. 경찰은 문재인정부 들어 처음으로 차벽을 설치했지만, 외국 원수 경호의 기본 원칙을 제대로 지켰는지는 의문이다.

반미 시위는 다반사가 됐다. 지난달 미국 해군 창설 242주년을 맞아 부산 해운대의 한 호텔에서 주한 미 해군사령부 주최로 파티가 열렸는데 이곳에 반미단체 회원들이 몰려들어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 바 있다. 그들은 ‘DOTARD Trump, STOP LUNACY! (노망난 늙은이 트럼프, 바보짓 그만!)’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양키 고 홈’을 외쳤다. 김정은이 트럼프 대통령을 비난하면서 사용한 ‘늙다리 미치광이’의 영어 표현이 ‘DOTARD’다. 앞서 평택 주한미군을 위한 천안시의 한국식 핼러윈 축제가 반미 성향 시민단체와의 마찰을 우려해 전격 보류됐고, 지난 6월에는 의정부시 주최 ‘미군 2사단 콘서트’ 역시 반미 성향 시민단체의 반발로 파행을 빚기도 했다.

민주사회에서 표현의 자유는 보장돼야 한다. 하지만 국빈 방문한 미국 대통령 면전에서, 주한미군 행사장에서 반미구호를 외치고 욕하는 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 형태의 반미 시위를 보면서 즐거워할 사람이 지구상에 김정은 외에 누가 있겠는가.

아니나 다를까. 북한 노동신문은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을 떠난 다음날 트럼프 방한 반대 시위 기사를 크게 실었다. 반미 단체가 플래카드에 적은 그대로 ‘트럼프, 우린 너를 환영하지 않는다’는 등의 제목을 달았고 “우리 겨레에 불행만을 강요하는 불망나니, 늙다리 미치광이 트럼프 행각을 반대하는 남조선 각계층의 투쟁이 7일 저녁과 8일 줄기차게 벌어졌다”고 보도했다. 또 문 대통령을 비롯한 현 정부 관계자들을 ‘괴뢰 당국자’라고 표현했다.

김정은이 핵 폭주를 멈추도록 국론을 모아야 할 때다. 우리가 일치 단결해도 과연 가능할지 분명치 않은 상황이다. 김정은이 박수치며 좋아할 경거망동은 삼가야 한다. 미국 내의 반한 감정을 부추길 가능성도 있다.

이런 와중에 주한 미국대사관 정무참사관을 지낸 데이비드 스트라우브는 최근 한 일간지 기고를 통해 이렇게 썼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문 대통령도 운동권 시각으로 미국을 바라보고 있다. 권력 내부의 반미 성향이 더 문제다.’ 스트라우브의 착각이라고 믿고 싶다.

김진홍 논설실장 j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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