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녀 외동딸 ‘한국 그린 접수’ 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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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녀 외동딸 ‘한국 그린 접수’ 경사

이정은, 올 KLPGA 대상·상금왕 등 공식 타이틀 4개 싹쓸이

입력 2017-11-13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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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이 ADT캡스 챔피언십 마지막라운드 9번홀에서 세컨드샷을 한 뒤 타구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 KLPGA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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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이 12일 경기도 이천 사우스스프링스 컨트리클럽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시즌 최종전 ADT캡스 챔피언십이 끝난 뒤 4관왕을 했다는 의미로 손가락 네 개를 펼쳐 보이고 있다. 골프계에서 소문난 효녀로 유명한 이정은은 “가족의 힘으로 성공했다”고 말했다. KLPGA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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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퍼로서의 목표는 내 다리같은 가족에게 효도하는 것입니다.”

올 시즌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는 ‘이정은(21) 천하’였다. 대상, 상금왕, 다승왕, 평균타수상까지 KLPGA 공식 타이틀 4개를 모두 휩쓰는 기염을 토했다. KLPGA에서 신지애, 서희경, 이보미, 김효주, 전인지에 이어 모든 부문 1위를 싹쓸이한 6번째 선수가 됐다.

지난 9일 경기도 용인 지산컨트리클럽 골프연습장에서 만난 이정은은 일반 또래처럼 해맑았다. 하지만 어릴적부터 가난을 사무치게 느꼈고 가족애를 통해 역경을 극복한 이정은은 효심 깊은 착한 골퍼였다.

외동딸인 이정은은 ‘소녀 가장’이다. 아버지는 전남 순천에서 덤프트럭 기사로 일했다. 하지만 이정은이 4살 때 아버지는 트럭이 30m 아래 낭떠러지로 추락하는 사고를 당해 하반신이 마비됐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 식구의 수입은 전혀 없었다. 그동안 아버지가 모은 돈과 정부 보조금으로 근근이 생활했다.

어린 이정은은 조금이나마 생계에 보탬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한 게 골프였다. 그것도 불과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이정은은 “처음에는 그저 골프를 배워 레슨 프로가 돼 부모님께 도움이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순천에 여자 레슨 프로가 없다는 얘기에 희귀성이 있을 것으로 보고 기뻐하기도 했다. 한 달에 10여만원을 내고 일반 골프연습장을 다녔다. 새 골프채는 엄두도 못냈다. 10년 지난 중고 골프채로 연습하니 눈치까지 보였다.

하지만 시작부터 재능이 돋보였다. 고교 2학년 때 전국대회인 베어크리크아마추어골프대회에서 예상 밖의 우승을 차지했고 이로 인해 국가대표에 뽑혔다. 생각지도 않은 복이 찾아오면서 이정은은 레슨프로가 아닌 골프선수의 길을 걷게 된다. 국가대표가 되면서 가장 좋았던 점이 “돈 걱정을 하지 않고 연습에 몰두할 수 있었다”였다.

하지만 이정은은 흔히 말한 골프 천재는 아니었다. 가족에 대한 남다른 책임감과 엄청난 훈련으로 자신의 단점을 메워 나갔다. KLPGA 2·3부리그를 뛰는 등 밑바닥부터 올라갔고 2016시즌 KLPGA 투어 시드권이 걸린 퀄리파잉스쿨도 30등으로 통과했다. 이정은은 “시드전 1라운드 때 117등이었다. 통과를 하려면 50위 안에 들어야 하는데 다행이 마지막 날 너무 잘 돼 간신히 통과했다”고 회상했다.

그리고 지난해 신인왕이 되면서 화려하게 프로에 데뷔했다. 벌어들인 돈으로 아버지에게 전동 휠체어를 선물했고, 전세금도 보탰다. 방 두 칸짜리 주택에서 이제 방 4개가 있는 넓은 아파트로 옮겼다. 자신의 첫 효도였다.

멘털도 좋다. 사실 이정은은 지난해 우승을 한 번도 하지 못해 ‘무관 신인왕’이라는 불명예가 따라붙었다. 그는 덤덤하게 “1년차보다는 2년차에 우승할 것이라고 생각해 크게 와 닿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래도 불과 1년 사이에 달라졌다고 하니 “숏게임이 단단해졌다”고 소개했다. 지난 겨울 50일간 태국 전지훈련에서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어프로치 샷 연습에 매달렸다. 내년 목표에 대해선 “4관왕 중 어떤 거라도 2연패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에게 가족이란 무엇일까. 망설임 없이 “내 다리같은 존재”라는 답이 나왔다. 걷지 못하는 아버지에 대한 효심이 드러났다. 이정은은 “아버지가 항상 (장애인용 승용차로) 직접 운전해 나를 데리고 다니신다”며 “골프를 하기 싫을 때면 가족을 생각하면서 힘을 낸다. 우리 가족을 위해 항상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KLPGA 대세라면 항상 듣곤 하는 미국 진출도 가족보다 후순위였다. 이정은은 “이동거리가 길어 아버지가 불편해 하실 수 있다”며 “미국 진출 생각이 아직은 없다. 일단 내년까지 한국에서 뛸 것”이라고 말했다.

용인=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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