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곽금주] 편가르기는 연약함의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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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곽금주] 편가르기는 연약함의 표현

입력 2017-11-14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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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한국 시리즈가 며칠 전 끝났다. 구단들이 모두 특정 지역을 토대로 하고 있기에 시즌만 되면 지역주민들이나 구단 팬들이 뭉치게 된다. 설령 가족이라도 지지하는 구단이 다르면 갈등이 야기되기도 한다. 스포츠 관련 갈등이야 그나마 해소의 여지가 있겠지만, 사실 우리 사회의 집단 간 갈등과 대치는 더 극심해지고 있다. 얼마 전 한 기업의 신입 여사원이 남자 상사로부터 성 피해를 당했다는 사건이 있었다. 아직 사실 파악을 하고 있긴 하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집단 간 갈등이 확산되고 있다. 갑과 을, 그리고 남과 여, 노사 간 대치 등 집단 간 갈등이 격화되는 양상이다. 뿐만 아니라 정계에서는 적폐청산으로 인한 이전 정부와 현 정부, 여당과 야당 간의 대치 또한 더욱 가열되고 있다.

사람들은 집단을 만들고 이에 소속하려는 욕구를 지닌다. 내가 속한 내집단과 나와는 다른 집단인 외집단 나누기는 어쩌면 인간의 본능일 수 있다. 우리 일상생활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운전자와 보행자의 차이를 볼 때, 자신이 보행자인 경우 뜸을 들이면서 문자 메시지를 보내면서 길을 건널 때 당연히 운전자는 이를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행자 우선이니 말이다. 그러나 자신이 기다리고 있는 운전자의 입장이 되면 답답해하며 보행자의 행위에 화를 내며 때로는 욕설을 내뱉기도 한다.

이렇게 우리 생활의 아주 사소한 부분에서도 쉽게 편이 갈라지고 이로 인한 자신의 입장이 달라지게 마련이다. 1960년대에 이루어진, 널리 알려진 고전적인 심리학 실험이 있다. 한 교실에서 학생들을 눈동자 색깔에 따라 파란색 눈동자 집단과 갈색 눈동자 집단의 두 집단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파란색이 더 우수한 눈동자라고 슬쩍 일러주었다. 그러자 파란 눈을 가진 아이들은 몇 분 만에 갈색 눈을 가진 아이들을 괴롭히며 차별했다. 반대로 갈색 눈이 더 우세하다고 말한 경우도 마찬가지의 차별을 보였다. 결국 그 순간 만들어진 아주 작은 편 가르기임에도 인간은 외집단에 대해 강한 반발과 부정을 보인다.

이는 자신의 정체감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자신이 누구이며, 이 세상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고 어디로 가는 것인가에 대한 막연한 불확실함을 가지고 있다. 이런 불확실함을 줄이고자 하는 욕구 또한 가지게 된다. 그런데 소속된 집단의 다른 구성원들과 동일시하게 되면 자신의 불확실함이나 불안감은 훨씬 더 감소된다. 집단이 가진 가치나 의미를 따르면서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그러다 보니 그 집단에 대한 평가는 곧 내가 어떤 사람으로 인식되는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런 측면에서 스스로의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자신이 속한 집단의 지위가 높아져야만 한다. 자신이 속한 집단의 지위를 높이기 위해 내가 속하지 않은 집단을 차별하고 부정적으로 깎아내리려 한다.

그런가 하면 내집단의 동일화는 극도의 위협을 느낄 때 특히나 강화된다. 불안과 두려움을 가질 때 안전에 대한 욕구가 강해지면서 내집단 사람들끼리 더욱 뭉치려고 한다. 내가 더 옳고 더 낫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상대를 계속 비판해야 하고 잘못된 부분을 부각시켜 들춰내야 한다. 자신의 집단을 지키려고 하는 강한 본능이 자신의 집단을 위협하는 대상에게 강한 반발을 보이면서 외집단에 대한 필사적인 공격이 일어나게 된다. 집단 간 싸움은 점차 더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결국 갈등만이 부각되어 사회 구성원을 더욱 불안케 하고 그 불안감으로 집단 가르기가 더욱 심해지는 악순환만이 거듭된다.

진정으로 나의 자아가 굳건하다면 외집단이 두렵지 않을 것이다. 내집단이 강력한데 외집단을 신경 쓸 리가 없다. 자신을 돌아보기 바란다. 결국 나의 연약함이 괜한 집단 가르기를 부추기고 그리고 상대에게 모든 잘못을 전가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할 것이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반려인 연구소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