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차은영] 혁신성장의 성공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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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시평-차은영] 혁신성장의 성공 조건

입력 2017-11-14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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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발표된 혁신창업 생태계 조성 방안은 정부 경제전략의 한 축을 담당할 것으로 기대되는 혁신성장을 위한 첫 번째 대책이라 할 수 있다. 신성장동력을 혁신벤처의 창업 활성화에서 찾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고 보인다.

창업 생태계 조성 방안의 방향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는 창업을 쉽게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고 각종 세제 감면 특혜를 주겠다는 것이다. 둘째는 벤처 붐을 조성할 수 있도록 정부와 민간이 30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펀드 자금을 통하여 지원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를 용이하게 하고 실패하더라도 재도전·재창업이 가능하도록 코스닥시장 활성화, 인수·합병 활성화 등의 제도를 정비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창업 생태계 현황은 다른 국가들에 비해 규모가 매우 작다. 2017년 기준으로 창업 환경을 수치화한 도시별 창업 생태계 가치는 실리콘밸리 2640억 달러, 베이징 1310억 달러, 싱가포르 111억 달러인 반면에 서울은 24억 달러로 실리콘밸리의 100분의 1, 베이징의 50분의 1, 싱가포르의 4분의 1에 불과하다.

4차 산업혁명은 우리의 모든 생활방식에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될 것이므로 비록 위험이 따르더라도 고부가가치를 만들어 내는 새로운 플랫폼과 상품을 끊임없이 연구·개발하고 산업화하는 혁신 생태계의 발전 없이는 살아남기 어렵다. 혁신 벤처들의 창업을 통해 중소기업의 역할을 재정립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려는 시도는 옳은 방향이다.

하지만 정부가 발표한 세부적 대책은 과거의 벤처기업 창업 지원책들과 큰 차이점을 발견하기 어렵다. 혁신 성장의 첫 단추가 될 창업 생태계 조성 방안이 성공하려면 첫째, 정부 주도에서 벗어나 민간 주도의 정책이 되어야 한다. 과거 벤처육성 지원책은 정부 출연연구기관들의 기술개발 과제 사업으로 자금이 대부분 흘러들어갔고 적당한 보고서와 결과를 내놓고 실질적인 제품 개발과 판매로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정부가 퍼주는 눈먼 돈에 의지해 연명하는 무늬만 기업들이 많았다. 정작 필요한 벤처기업으로 자금이 유입되지 못하였다.

2016년 벤처기업정밀실태조사에 따르면 3만1189개 업체 중 기술보증기금, 중소기업진흥공단 등 정부 정책금융기관에서 받은 보증과 대출로 벤처가 된 기업이 93.9%인 반면 벤처캐피털 투자를 통해 벤처가 된 기업 비율은 2.7%였다. 연구개발 투자로 벤처가 된 기업의 비중 3.4%를 합친다 해도 시장을 통해 벤처기업으로 발돋움한 기업의 비중은 전체에서 7% 남짓하다. 과거 벤처 붐의 실패처럼 좀비 중소기업을 양산하고 투자자들의 손실을 초래하지 않기 위해서는 기업과 연구자, 그리고 투자자들의 보다 높은 자율성이 보장된 생태계가 조성돼야 한다.

둘째, 혁신모험펀드의 핵심은 그 규모가 아니고 운용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향후 3년 동안 10조원 규모의 혁신모험펀드가 조성된다고 하는데 과거에도 유동성의 부족보다는 적격한 창업지원 대상을 찾기 어려웠다는 점에서 적재적소에 펀드가 유입되도록 운용과정의 체계화에 더 공을 들여야 한다. 농업과 어업에 대한 무조건적 지원으로 유사농민과 유사어민이 얼마나 많이 양산되었는지 모른다. 묻지마 자금 쏟아붓기로 유사벤처를 양산해서 선량한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반복되면 벤처 생태계는 급속히 위축될 수밖에 없다.

셋째, 벤처투자의 선순환체계를 위해 코스닥시장을 인위적으로 활성화시키는 일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특히 국민의 미래를 책임지는 연기금을 정부 쌈짓돈으로 생각하는 발상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코스닥 기업 중 53.6%가 올 상반기에 적자를 기록했다. 코스닥의 문턱을 낮추기보다는 오히려 기업들의 투명성이 제대로 평가되고 대기업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M&A가 활성화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시급하다. 믿을 만한 벤처기업들에 대한 투자자금은 정부가 억지로 조성할 필요가 없다.

차은영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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