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원준 칼럼] 뉴질랜드의 ‘쥐 없는 나라’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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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원준 칼럼] 뉴질랜드의 ‘쥐 없는 나라’ 프로젝트

입력 2017-11-21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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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발 하라리는 저서 ‘사피엔스’에서 4만5000년 전 인류의 호주 정착 과정을 추론하며 이렇게 썼다.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에 못지않은 사건이었다. 인류가 최초로 아프로아시아 생태계를 벗어났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신세계에서 저지른 짓이다.’ 인간이 발을 딛고 몇 천 년 지나지 않아 몸무게 2.5t의 디프로토돈이 멸종했다. 그런 유대목 대형동물 24종 중 23종이 사라졌다. 호주 생태계 먹이사슬을 완전히 바꿔놓은 인류를 그는 “지구에서 가장 치명적인 종(種)”이라고 했다.

현대인이 바다 건너 이 대륙에 다시 찾아간 것은 250년 전이다. 독특한 자연환경을 가졌던 땅은 더 급속히 바뀌었다. 개발의 물결에 휩쓸려 더 많은 동물이 멸종한 뒤에야 사람들은 환경을 말하기 시작했다. 곳곳에 보호구역을 만들고 규제 장벽을 쌓아 사라져가는 동물에 보금자리를 내주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인간은 보호에 나섰지만 인간을 따라 이곳에 온 다른 종은 그 필요성을 깨닫지 못했다. 바로 쥐였다.

호주에 인접한 뉴질랜드의 상징 조류 키위는 날지 못한다. 땅에 천적이 없어 그냥 걸어 다니며 수천년을 살았다. 뉴질랜드에 200종이나 되던 이런 새들이 요즘 연간 250만 마리씩 죽어간다. 앵무새 중 유일하게 날지 못하는 카카포는 몇 백 마리 남지 않았다. 쥐를 비롯한 설치류가 원인이었다. 방어력이 약한 토종 새들의 새끼와 알을 외래종 쥐들이 먹어치우는 통에 멸종시계는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지난해 6월 존 키 당시 총리는 “과거엔 인간의 밀렵과 벌채가 토착동물을 위협했지만 이제 외래 사냥꾼 동물이 최대 위협”이라며 뉴질랜드의 모든 쥐를 박멸하겠다고 선언했다. 환경운동가들이 해온 일을 정부가 받아들여 ‘프레데터 프리(Predator Free) 2050’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2050년까지 ‘쥐 없는 나라’를 만든다는 뜻이다. 키 총리는 인류의 달 착륙에 빗대 “아폴로 프로젝트에 버금가는 담대한 도전”이라고 표현했다.

뉴질랜드는 몇몇 작은 섬에서 드론으로 쥐약을 살포하며 쥐 박멸에 성공한 전례가 있었다. 하지만 한반도 면적의 1.2배인 땅에서 모든 쥐를 없애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다. 환경운동 진영은 생명공학의 혁명적 신기술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에 눈을 돌렸다. DNA 염기서열 중 일부를 잘라내 편집하는 이 기술은 생물의 속성을 콕 집어 바꿀 수 있다. 이를 이용해 쥐의 생식기능을 확 낮추자며 뉴질랜드와 미국 연구팀이 실험을 진행했다.

‘난임(難姙) 유전자’를 개발하고 이를 가진 ‘운반체’ 쥐를 만들어 야생에 풀어놓으면 자기들끼리 번식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난임 형질이 확산돼 결국 박멸에 이르리란 구상이었다. 이렇게 특정 유전자를 집단 전체에 퍼뜨리는 걸 ‘유전자 드라이브’라고 부른다. 말라리아 모기에 시도된 적은 있지만 포유류는 처음이다.

연구를 맡은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케빈 에스벨트 교수는 지난주 시뮬레이션 결과를 공개했다. 그러면서 “이 아이디어를 꺼내지 말았어야 했다. 나의 큰 실수였다”고 말했다. 너무 강한 확산력에 놀라서 한 말이었다. 그는 “유전자 운반체가 한 줌만 있어도 모든 개체로 퍼지는 데 오래 걸리지 않는다. 뉴질랜드를 넘어 세계로 퍼질 수도 있다”고 했다. 쥐가 아예 지구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쥐가 된다면 다른 생물도 못할 까닭이 없다는 생각에, 이것이 더 심각하게 생태계를 파괴할지 모른다는 사실에 놀란 터였다.

흔히 IT를 떠올리는 4차 산업혁명의 다른 축에 바이오테크놀로지가 있다. 인공지능 못지않게 세상을 뒤바꾸는 파괴력을 가졌다. 환경을 보호하려 시작한 일에서 환경 재앙 경고음이 나온 것은 이런 기술 혁명이 얼마나 아슬아슬한 줄타기인지 말해준다. 그래도 어디선가 연구는 계속될 것이다. 선한 의지가 선한 결과를 낳으리란 기대부터 접고 지켜봐야 할 듯하다. 그러기에 우리는 너무 치명적인 종이다.

태원준 온라인뉴스부장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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