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칼럼] 또 사고 쳤는데 책임질 일 없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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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홍 칼럼] 또 사고 쳤는데 책임질 일 없다니

입력 2017-11-26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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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이 개혁 대상이다. 재벌도 마찬가지다. 이전 정부들도 재벌개혁을 추진했지만, 문재인정부처럼 서슬 퍼런 적은 드물다. “확고한 재벌개혁으로 경제교체와 국민성장을 반드시 이루겠다”는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은 현재진행형이다. 문 대통령이 당시 강조한 재벌의 반(反)시장 범죄 퇴출, 투명한 경영구조 확립, 갑질 횡포의 저지 등을 위한 조치들이 가시화되고 있다. 재벌이 경제성장을 이끌었지만 한편으론 반칙과 부정부패로 공정한 시장을 어지럽힌 측면이 있기 때문에 이를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시민단체에 오래 몸담아온 장하성과 김상조를 청와대 정책실장과 공정거래위원장에 중용한 데서도 재벌개혁에 대한 문 대통령의 강한 의지가 읽힌다. “재벌들 혼내고 왔다”는 말이 경제관료 입에서 서슴없이 나오는 시대다.

그러면서 예전 정부처럼 정상외교엔 재벌들이 동원된다. 재계는 지난 8, 9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방한 때 향후 5년 동안 83조원 이상의 대미 투자와 미국산 제품 구매를 약속했다. 지난 6월 문 대통령 방미 때에는 동행해 미국에 선물 보따리를 안기며 한·미 정상회담 분위기를 돋웠다. 압박 받으며 정부를 위해 돈을 써야 하니 “기업들이 죽어난다”는 토로가 나올 법도 하다.

하지만 일반인들 사이에 퍼져 있는 반(反)재벌 정서는 재벌 스스로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경제 성장의 과실을 독차지한 건 아닌지,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인색한 건 아닌지 등 반성할 부분이 적지 않다는 얘기다.

게다가 빈발하는 재벌 2, 3세들의 안하무인격 언행으로 반재벌 정서가 확산되고 있다. 최근 알려진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3남 김동선씨 갑질은 기가 막힐 지경이다. 28세인 그가 지난 9월 말 서울 종로의 한 주점에서 막말과 폭행까지 한 대상은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그리고 내로라하는 대형 로펌 변호사들이었다. 여성 변호사도 봉변을 당했다. 술에 취했다지만, 그의 천박한 의식 상태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니네 아버지 뭐해? 내가 누군지 알아? 내 아버지가 재벌 회장이야. 그러니 똑바로 앉아 존댓말 해.’ 이런 식이다.

더욱이 처음이 아니다. 주지의 사실이지만, 지난 1월 그는 서울 청담동 술집에서 만취 상태로 바 위에 앉아 종업원에게 “야야, 똑바로 안 해”라며 뺨을 때리고, 술병을 휘둘렀다. 경찰에 연행되면서는 순찰차 좌석 시트를 찢었다. 동영상이 공개돼 공분을 불러일으킨 이 사건으로 구속됐다가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났다. 2010년엔 서울의 한 호텔 지하주점에서 행패를 부렸다.

집행유예 기간 중 또 물의를 빚은 그는 고개를 숙였다.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을 만큼 부끄럽습니다. 피해자 분들께 사죄드리고 용서를 빕니다.” 지난 2월 22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첫 공판기일에 참석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너무 부끄럽고 술을 먹었다고 해도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많이 반성하고 열심히 살겠습니다.” 반복되는 비슷한 사과, 정말로 뉘우치고 있는 건지 의문이다.

대한변호사협회 고발에 이어 경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으나 피해자들이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밝혀 처벌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변호사들마저 꼬리를 내리니 금력(金力)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하지만 어물쩍 넘어가선 안 된다는 게 중론 아닐까 싶다. 벌써부터 ‘김씨가 주식만 440억원대를 갖고 있다면서요? 또 유전무죄인가요? 재벌 아닌 20대 청년이 비슷한 사건을 일으켰어도 그냥 넘어갈까요?’라는 지적이 그치지 않는다.

여파는 김씨 개인이나 한화그룹 총수 일가 차원을 넘어 재벌 전체로 번지고 있다. 재벌개혁을 주요 국정과제로 꼽고 있는 여당이 총대를 고쳐 멨다.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정책위의장이 최근 김씨를 비롯해 재벌 총수 일가의 갑질 사례들을 열거한 뒤 “재벌의 모든 갑질은 특권의식이 만든 적폐”라며 “경제 적폐청산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강조한 것이다. 조만간 후속조치가 나올 듯하다. 그는 “근본원인은 기업 오너에게 모든 권한이 집중된, 잘못된 지배체제 때문이다. 능력 검증 없이 초고속 승진하고, 경영 전면에 나서면서 대기업이 오너 리스크에 무방비로 노출됐다”고 일갈하기도 했다.

재계가 정부나 정치권과 접촉하며 반기업 정서 완화와 규제혁파 등 기업들이 일하기 편한 환경을 조성해달라고 요청하는 건 수긍이 간다. 그러나 외부 환경을 탓하기보다 재벌가의 의식을 바로잡고, 총수 일가에 과도하게 집중된 권력을 분산시키는 게 먼저 아닐까 싶다. 재벌가의 고질이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오지 않는가.

김진홍 논설실장 j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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